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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안희정 피해자 증인 “닭꼬치 팔러 다녀”…미투 5년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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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치 못한 삶…공직 못 돌아가”

반면 안희정 쪽 증인들은 승승장구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들 돌아오는데

한국 사회는 얼마나 대처할 준비 됐나


한겨레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022년 8월 4일 오전 만기 출소해 경기 여주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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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김지은씨의 ‘미투’(Me Too·나는 말한다) 이후 4년 반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난 4일 충남도지사 시절 김씨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3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안희정(58)씨가 출소했다. 김종민·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를 마중 나왔다. 안씨는 취재진에게 한차례 고개 숙였지만, 피해자를 향한 어떤 사과의 말도 없었다.

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성폭력 가해자들이 속속 사회로 나오고 있다. 동시에 피해자들은 어느 곳에도 갇히지 않고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온전한 일터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드물다. 돌아가더라도 2차 피해를 피하기 위해 이름이나 겉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한국 사회가 각계의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들이 돌아오는 이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미투운동 중간결산: 지금 여기에 있다’ 좌담회가 열렸다. ‘성찰 빼고 돌아올 때: 가해자 처벌 후 복귀 전, 공동체의 숙제’, ‘피해 부정의 시간, 2차 피해 해결은 가능한가?’, ‘피해자는 일상으로: 달라진 우리로 살아가기’ 등 3개 세션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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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좌담회 ‘미투운동 중간결산: 지금 여기에 있다’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FDSC) 프로젝트 전시 ‘미투운동이 당신에게 건넨 말’도 함께 진행했다. 제작 FDSC(고혜림 양으뜸 도한결 양민영 최슬기 장지영 김리원 이지원 안지경 김수영 성윤주 양지은 김헵시바 박영신 정연수),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그래픽_스프레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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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과 일한 8년 경력 휴지조각…공직 못 돌아가”


피해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의 조력자도 돌아갈 ‘일상’을 잃었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안씨 성폭력 사건 이후 양쪽 증인들의 상반된 삶이 전해졌다. 피해자 쪽 증인으로 나섰던 전 비서 신용우씨는 “진실을 증언하겠다고 검찰 쪽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은 재판 뒤 순탄치 못한 삶을 감내해야 했다”고 했다.

신씨는 “유능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증인 중 한 명은 정치계에서 이유 없는 해고를 반복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또 다른 증인은 무죄로 결론 나기는 했지만 모해위증죄로 고소당하기도 했으며, 어느 증인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야 했다”고 했다. 신씨는 “(안씨와) 8년의 세월을 함께했지만, 그 경력을 이력서에 한 줄 넣지 못하고 공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며 “생계를 위해 작은 트럭을 사서 아파트 단지를 돌며 닭꼬치를 팔았다”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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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미투운동 중간결산: 지금 여기에 있다’ 좌담회가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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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안씨 쪽 증인들은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신씨는 “(안씨에게 유리하게 법정 진술한) 증인은 9급보다 낮은 직급에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한 번에 다섯 단계 승진했다가 그 후 청와대 행정관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다른 증인들도) 대전시 산하기관장을 비롯한 정부기관 곳곳에 임명됐다”고 전했다.

“가해자는 돌아오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돌아갈 일상이 없다.” 좌담회에 참석한 피해당사자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공동체에게는) 결국 (피해자의) 새로운 일상을 창조해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이를 위해서 △피해당사자에 대한 더 많은 말하기 지원 △피해자 일상 회복을 위한 조직적 매뉴얼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대안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피해 당사자의 ‘더 많은 말하기’는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에서 나아가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말하는 피해자’의 용기를 이 사회에 확대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폭력 피해자 10명의 글을 모아 낸 책 <허들을 넘는 여자들>을 펴낸 에디터 ‘허’는 “아직도 ‘미투 무서워서 말 못하겠다’고 하면서 할 말 다하는 사람들(가해자, 2차 가해자)이 있지 않느냐. (이런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서) 결국 피해당사자의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미투 운동은 ‘기득권과의 싸움’”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분노,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피해자의 용기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해자 조치 매뉴얼은 있어도, 피해자 지지 매뉴얼은 없다”


‘피해자 지지 매뉴얼’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권수정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진상조사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후속 조처를 한다. 이렇듯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에 대한 매뉴얼은 있지만, 피해자를 어떻게 지지하고 응원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은 없다”며 “이를 조직적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2차 가해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잡아내서 처벌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며 “피해자와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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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미투운동 중간결산: 지금 여기에 있다’ 좌담회가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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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피해’를 방지할 실질적인 수단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보라 국회여성정책연구회 회장은 “(2018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제정됐지만 ‘2차 피해’ 개념이 추상적으로 정의돼있고 방지 수단도 제한적이다”고 지적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사실상 ‘선언’적인 내용”이라며 “2차 가해에 대한 제재 수단은 교육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법제화’라는 성과는 있었지만 강제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제도화해야 하는지, 모든 사건을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고 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 <한겨레>는 △성범죄 사건 등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예상되는 기사 △기사에 피해자가 부득이 등장해 해당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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