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재집권 1년, 위기의 아프간
지하에 숨고… 얼굴 가리고 지난달 3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지하 학교’에서 히잡을 두른 여학생들이 당국의 감시를 피해 공부하고 있다(윗쪽 사진). 탈레반 정부는 중고교 여학생들의 등교를 금지했다. 이달 11일 여학생 등교 금지 대상이 아닌 카불의 종교 관련 학교에서 눈을 제외하고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는 니깝을 입은 여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카불=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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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제가 남자 형제에게 제 일자리를 넘기길 원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여성은 수니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지 꼭 1년이 되는 15일 영국 BBC방송에 동료 여직원이 자신에게 보냈다는 메시지를 조심스레 보여줬다. 두 사람은 모두 탈레반 집권 전 재무부 등 국가 요직에서 근무하던 고위 공무원이었지만 현재 무직 상태다. 탈레반이 권력을 잡자마자 여성 공무원들에게 “당신의 일을 남자 친척에게 넘기라”며 직장을 그만둘 것을 강요한 탓이다.
탄압이 두려워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은 이 여성은 자신 역시 현 직장을 얻기 위해 석사 학위를 따고 17년을 일했지만 ‘제로(0)’ 상태가 됐다며 허탈해했다. 막무가내식 일자리 빼앗기를 용인하는 것은 스스로를 배신하는 행위임을 잘 알지만 탈레반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교육·취업 기회 뺏긴 아프간 여성
1996∼2001년 첫 집권 당시 여성 교육 및 취업 금지 등 세계가 경악할 만한 억압 정책을 폈던 탈레반은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 사회 우려를 의식한 듯 지난해 재집권 직후 “여성의 일자리 및 교육 기회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곧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탈레반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남녀 학생의 교실을 분리하고 여학생 교육을 금했다. 전국 곳곳에 ‘여성은 얼굴을 포함해 신체 전부를 가리고 다니라’는 커다란 포스터를 붙였다. 여성의 머리를 감싸는 이슬람 전통 복장 히잡 착용도 의무화했다. 신체 전부를 가리는 전통 복장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길거리에서 사살되는 일도 벌어졌다. 여성은 항상 집에 머물러야 했다. 남성을 대동하지 않고는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이후 부르카 착용까지 의무화했다.
탈레반은 올 3월 중고교 여학생의 등교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새 학기 첫날 돌연 말을 바꿔 여학생 등교를 금지했다. 18세 소하일라 양은 BBC에 “나를 포함해 모든 아프간 여학생에게 힘든 1년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1등이었는데 학교에 가지 못해 너무 슬프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1년간 집에서만 지냈다는 페레슈타 알리야르 양(18)도 뉴욕타임스(NYT)에 “집이 내 세계의 전부”라고 했다.
○ “1인당 국민소득 46만 원 예상”
세계에서 가장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프간 경제는 더 큰 수렁에 빠졌다. 탈레반의 억압 정책, 세계적 물가 상승, 가뭄 등으로 생활고가 극심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탈레반 집권 전 493달러(약 64만 원,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에서 올해 350달러(약 46만 원)에 불과할 것으로 미 아프가니스탄재건감사관실(SIGAR)은 예측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올해 아프간 성인 남성 실업률을 29%로 추정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9∼12월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진단했다. 현재 20가구 중 한 가구만 음식이 충분할 정도로 식량난도 상당하다. NYT는 “빵집 주변에는 혹시라도 공짜 빵을 받지 않을까 하고 여성들이 몰려 있다. 한때 사무실에서 일하던 남성들은 시장에서 야채나 중고물품 등을 판매하며 겨우 약간의 음식을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 집권 전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나 가족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했다는 누르 모하마드 씨는 BBC에 “총격전보다 무서운 것이 가난과의 싸움”이라고 토로했다.
미국에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철군 결정 및 과정이 졸속이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야당 공화당 의원들은 14일 자체 보고서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카불 함락에 대한 사전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채 성급히 철수를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최소 12만 명의 카불 시민이 미국으로 피란했어야 하지만 카불 공항에는 불과 36명의 미 영사관 직원들만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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