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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탈레반은 변하지 않았다”···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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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중고등교육 사실상 금지

식량난 등 인도주의 위기 심각

경향신문

13일 카불에서 탈레반 비판 시위를 열었다 강제 해산당하는 여성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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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지 15일(현지시간)로 1년을 맞는다.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 이슬람 토후국’ 건설을 선포한 후 1년 사이에 여성들은 직장에서 쫓겨났고 여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얼굴도 가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음악과 드라마는 금지되고 권선징악부와 도덕경찰이 부활했다. 국민 70%가 빈곤선 이하로 떨어지는 등 경제는 파탄이 났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에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몰려들어 글로벌 테러리즘의 요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공공영역에서 여성부터 지운 탈레반


탈레반은 재집권 후 가혹한 통치 방식으로 반발을 샀던 1996~2001년 집권기와는 다른 통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탈레반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아프간 여성의 일상은 파괴에 가까운 변화를 맞았다.

일터, 학교 등 공공영역에서 여성들을 지우는 조치들이 부활했다. 장관부터 사무직까지 여성 공무원들이 일제 해고됐다. 여성 취업은 학교, 병원 등 일부 기관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여성부가 폐지되고 권선징악부가 부활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따른 각종 제한 조치들이 법제화됐다. 탈레반 최고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는 지난 5월 TV 앵커를 포함해 모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부르카로 가려야 한다고 명령했다. 여성은 남성 가족이나 친척이 동반하지 않으면 72km 이상의 장거리 여행이 금지됐다. 카페와 공원은 남성 전용일과 여성 전용일을 따로 나눠 이용하도록 했다.

한국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7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여학생 교육은 사실상 금지됐다. 탈레반은 적절한 복장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3월 여학교 개학을 무기한 연기했다. 여성 대학교육은 등록생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강의실에 커튼을 쳐 남녀 학생이 섞이지 못하도록 공간을 분할하고 남녀 출입구도 따로 둬야 한다. 많은 여학생들이 자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간의 여대생 수는 2020년 기준 11만명이다.

아프간 여성들은 ‘미래를 빼앗겼다’는 절망에 빠져 있다. 국립대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페레쉬타 알리야르(18)는 언젠가 아프간을 떠날 것이란 희망으로 예전에 쓰던 영어 교과서를 부여잡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서는 여성들의 시위가 열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성 약 40명이 이날 ‘8월15일 블랙데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빵, 노동, 자유” “정의, 우리는 무지에 지쳤다”고 외치며 교육부 건물까지 행진했다. 탈레반 무장대원들은 허공에 위협 사격을 하고 시위 참여자들을 구타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집권기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적이지 않은 것’들은 모두 퇴출됐다. 대중문화는 물론 민요 등 전통 문화까지 반이슬람적인 것으로 여겨져 금지됐다. 남성도 수염을 의무적으로 길러야 한다.

언론 탄압도 극심해졌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탈레반 재집권 이후 3개월 만에 아프간 언론의 43%가 문을 닫고 언론인 수는 1만780명에서 4360명으로 줄었다. 이란으로 망명한 언론인 살레하 아이니는 “탈레반은 여러 차례 나를 체포하려 했다. 그들이 우리 집을 여러 번 방문해 우리 가족을 협박해 나는 아프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도이체벨레에 말했다.

경제난 극심…인구 70%가 빈곤선 이하


아프간의 경제는 1년 사이 파탄이 났고 기근 등 인도주의적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국제 제재로 80억달러의 자금이 동결됐으며 이는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경제난에 가뭄, 지진 등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식량 위기가 극심한 상태다.

미국평화연구소 아프간 수석전문가 윌리엄 버드는 “아프간 경제는 1년 사이 20~30% 후퇴했다. 최근 더 하락하는 것은 멈췄지만 인구 대부분이 식량과 기타 필수품을 살 여유가 없다. 인도적 지원이 없으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유엔개발계획은 현재 아프간 인구의 72%가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 이 수치가 97%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경고했다. 인권단체 휴먼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수백만명의 어린이가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고 심각한 장기적 건강 문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단주의 세력의 요람 되나


탈레반 집권 1년이 다 됐지만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아직 탈레반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엔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국제기구들도 이미 무너진 전 정부를 여전히 아프간의 공식 정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지진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원조를 제공하고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일대일로 사업을 제안하는 등 아프간과의 관계 심화를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와 인도 등 아프간과 국경에 인접한 강대국들도 아프간과 접촉을 늘리고 있다. 현재 카불에서는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대사관을 운영 중이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집권했을 때 일부 주민들은 20년 동안 이어진 내전의 종식을 환영했다. 지난 1년간 탈레반의 거점이었던 헬만드주 등 남부 지역에서는 무장 투쟁이 사그라지면서 치안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아프간 전체적으로 보면 치안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IS-K는 지난 3~4월 라마단 기간 아프간 북부의 시아파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연쇄 폭탄테러를 일으켜 1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최근 카불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의 후계자인 알카에다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의해 사살됐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어기고 테러조직 수장을 숨겨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탈레반의 국제사회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특히 탈레반 재집권에 고무된 극단주의 세력이 아프간으로 몰려들어 아프간이 테러조직의 요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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