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의견서 제출…강제집행 방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배상 판결 불이행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동원돼 일본 기업에서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의 소녀들.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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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현금화 명령 마지막 단계까지 와 있는데, 외교부가 의견서를 제출하기 전에 최소한 허락은 아니지만 양해라도 구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2일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가 공개한 ‘7월28일 외교부 면담 녹취록’을 보면, 시민모임 장은백 변호사가 이상렬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에게 “의견서를 (피해자와) 한마디 상의없이 낸 것은 소송방해라고 생각하며, (외교부가)공개적으로 사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있었던 외교부와의 면담엔 외교부 관계자 3명과 시민모임 관계자 6명이 참석했다.
2007년 5월31일 일본 나고야 고등재판소 기각 판결 후 법정을 빠져나오면서 오열하는 양금덕 할머니를 주위에서 부축하는 모습.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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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외교부는 7월26일 근로정신대 피해자로 대법원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양금덕(1929년생)‧김성주(1929년생) 할머니의 채권과 관련한 상표권·특허권 특별 현금화(매각) 명령 사건이 계류된 대법원 상고심 담당 재판부 2곳에 대법원 민사소송규칙 제134조의2를 근거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날 면담은 의견서 제출과 관련해 외교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상렬 외교부 국장은 이날 시민모임 관계자들에게 “현금화라는 것은 일본 기업 자산이 실제로 넘어가는 상황을 의미하는 거다. 넘어가게 되면 일본이 거기에서 보복할 것이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차원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무엇이냐. 현금화가 되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 4명(왼쪽)은 7월28일 광주 일제 강제동원 시민모임 사무실을 방문해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일제 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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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배제한 채 이뤄졌다는 점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장관은 현안보고 때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보고했는데 의견서 제출과 관련해 피해자, 원고 측에 충분히 설명했느냐?”고 질의하자, 박 장관은 “피해자 측에는 의견서를 내고 나서 외교부에서 찾아가서 설명해 드렸다”고 답변한 바 있다.
박 장관의 답변대로 외교부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기 전 어떠한 사전 설명도 하지 않았고, 의견서의 내용도 함구한 채 시민모임에 일방적으로 사후 통보해 반발을 샀다. 시민모임은 2일 오후 2시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은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사건의 강제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국언 시민모임 상임대표는 “현금화 문제는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며 발로 뻥뻥 차고 있는 일본 기업과 일본 정부 때문에 빚어진 일인데, 한국 정부는 오히려 현금화 전에 해결책을 내겠다고 한 뒤 대법원에 의견서까지 제출했다”며 “외교부가 8번의 판결과 결정을 거쳐 어렵사리 강제집행을 앞둔 피해자들의 손발을 묶고 있다. 이 의견서는 처음부터 제출되지 말았어야 할 것이지, 사후 통지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정부가 후생연금 99엔을 지급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모욕했는데도 이명박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자 2010년 1월26일 외교부 규탄 시위에 나선 할머니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참석자가 김성주할머니.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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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대법원 의견서 제출은 이번이 두 번째로, “부적절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는 2015년 1월28일 박근혜 정부 때 대법원이 신설한 정부의견서제출제도라는 신설 규칙을 ‘활용’해 2016년 11월25일 대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의견서엔 ‘강제징용 사건 대법판결이 그대로 인용될 경우,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대외 신인도가 손상될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2016년 촛불시위 뒤 사법부가 청와대·외교부와 강제동원 피해자의 재판진행 연기 등을 비밀리에 의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법 농단’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두번째 의견서 제출도 피해자들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은 점 등이 2016년 때와 ‘닮은꼴’이다. 시민모임은 “외교부는 2016년엔 대법원에 계류 중인 원고들의 판결을 훼손할 목적으로 의견서를 제출했고, 이번엔 강제집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가 또다시 역사의 시계를 사법 농단의 시기로 되돌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교부는 현금화 결정이 내려지기 전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피해자 단체, 학계, 언론계 인사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꾸렸지만,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소송 대리인단은 불참을 선언한 상황이다. 시민모임은 “1~2개월 안에 대법원 특별현금화 명령이 확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시기에 외교부의 의견서가 제출됐다”며 “대법원은 신속하고 적법하게 강제집행 절차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대법원은 2018년 11월29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돼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던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등에게 1억~1억 5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지만 해당 기업은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양 할머니 등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상표권·특허권 등을 매각해 현금화한 뒤 배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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