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붕괴 때 공보·문화부 장관 역임한 와파예자다 인터뷰
"탈레반, 변한 게 없어…국제사회, 그들 인정하면 안돼"
모함마드 카심 와파예자다 아프가니스탄 전 공보·문화부 장관 |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탈레반은 자신들이 여전히 적과 싸우며 산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과격 테러리스트 집단에서 집권당으로 변신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탈레반에 의해 무너진 아프가니스탄 전 정부에서 마지막 공보·문화부 장관을 지낸 모함마드 카심 와파예자다(42)의 말이다.
와파예자다 전 장관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20년 전 엄혹하게 아프간을 통치했던 탈레반이 재집권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탈레반이 과거 통치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달라졌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고 변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1차 통치기(1996∼2001년) 때 오락을 금지하고 여성의 외출과 교육을 제한하는 등 엄하게 사회를 통제했다.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적용해 이슬람 질서를 구축한다는 명목이었다.
지난해 8월 재집권 후에는 여성 인권 존중, 포괄적 정부 구성 등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아직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와파예자다 전 장관은 "그들은 국민을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반대로 가는 등 약속 실현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무관용의 강경한 어젠다를 밀어붙이는데 더 자신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엄격한 성차별 정책으로 인해 여성들은 취업, 여행, 교육 등에 제한을 받고 있다"며 "일부 여성운동가는 아프간을 '여성의 무덤'이라고 부른다"고 강조했다.
특히 포괄적 정부 구성 약속과 관련해서는 "탈레반은 포괄적이라는 말을 여러 지역에서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이들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여기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와파예자다 전 장관은 탈레반 집권 후 아프간에 극단주의 테러리즘이 더욱 극성을 부리는 점도 우려했다.
그는 "국제 테러 조직들이 아프간을 피난처로 여기고 있다"며 "이슬람국가 호라산(IS-K) 등 현재 20개가 넘는 테러 조직이 활동하며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아프간 바미얀주에서 경계 활동 중인 탈레반. |
그는 공보·문화부 장관직을 수행하다가 전 정부의 최후를 겪었다.
와파예자다 전 장관은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의해 함락된 작년 8월 15일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날 저는 공보·문화부에서 간부들과 긴급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탈레반 통치를 피해 지방 도시를 떠난 난민들을 카불로 이동시키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회의 도중 카불 서쪽에서 혼란이 생겼고 대통령마저 도망갔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시 탈레반은 전 정부 관리 등에게 사면령을 내렸지만 믿지 못한 그는 급히 은신처로 몸을 피했다. 바로 다음 날 탈레반은 그의 집을 급습한 후 가족을 협박하는 등 급박한 순간이 이어졌다.
이후 터키 외교관의 도움으로 터키로 피신하는 데 성공했다.
터키 도착 일주일 후 그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던 일본 가나자와 대학교에서 임시 특임교수 자리를 제안해 일본으로 거처를 옮겼다.
와파예자다 전 장관은 아프간 전 정부가 국제사회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붕괴한 것은 국가 지도층의 능력 부족, 만연한 부패, 소수의 권력 장악, 막연한 낙관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2020년 2월 카타르 도하에서 국가도 아닌 탈레반과 협상을 벌여 평화 합의에 서명한 것은 이런 상황에 결정타를 안겼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미군과 나토군의 철수로 생긴 군사력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며 "미군에 군수지원을 전적으로 의존하던 아프간군은 완전히 혼란과 마비에 빠지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와파예자다 전 장관은 탈레반 정권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여성을 포함한 아프간의 새로운 세대가 새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는 등 그동안 아프간의 사회정치적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며 탈레반이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아프간 내의 불만이 너무나 만연한 상태라고 했다.
또 국제사회가 탈레반 정부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면 다른 테러 조직도 탈레반과 같은 길을 따르도록 고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탈레반은 국제 정치에서 '뉴노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 아프간 국민이 권력을 되찾고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와파예자다 전 장관은 "아프간은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을 겪고 있다"며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나 다른 기관들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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