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 거센 요구에도 국무부 "이미 제재하고 있어" 신중론
외교 단절·경제적 추가 피해·외교관 추방·국제소송전 부담 꺼리는 듯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미 행정부의 태도는 신중하기만 하다.
뉴욕타임스(NYT)는 29일(현지시간) 미 국무부가 테러지원국 지정을 주저하고 있는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미 의회와 우크라이나는 최근 몇 주간 러시아 테러지원국 지정을 강하게 압박해왔다.
미 상원은 27일 우크라이나와 체첸, 그루지야, 시리아에서 인명 살상 공격을 벌인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6월 말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라고 미국에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하지만 지정 권한을 가진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26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이미 많은 제재를 받고 있다면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에 부과한 비용은 러시아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될 경우 생기는 결과와 완전히 동일선상에 있다"며 "우리가 하는 일의 실질적인 효과는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NYT는 블링컨 장관의 이런 태도는 테러지원국 지정이 러시아에게 이미 타격을 입은 경제 주체들의 피해를 더 키울 가능성을 우려하는 국무부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미 정부는 원조와 국방 관련 수출 및 판매의 제한, 군민 양용 물품 수출 통제에 들어가야 하고, 테러지원국과 거래한 국가에 대해서도 제재를 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관리는 이런 조치가 러시아와의 일부 거래에 대해서는 벌칙을 면제해주고 있는 행정부의 재량을 제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은 식품 거래와 같은 일부 영역에서는 러시아와의 거래를 용인하고 있는데 테러지원국이 되면 모든 거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인이 러시아 측과 하는 모든 거래가 불가능해진다.
또 러시아가 테러지원국이 되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다 죽거나 다친 미국인의 가족 등이 러시아에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막을 수 없다는 점도 부담인 것으로 전해졌다.
더 근본적으로는 바이든 행정부는 테러지원국 지정으로 모스크바와 이미 제한된 외교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링컨 장관은 이런 점을 상기시키는 듯 29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로 상대국에 억류된 자국민의 석방 문제를 논의했다. 양국 장관의 접촉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처음이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2015년 이란 핵 합의 복원을 위한 국제회담을 포함해 러시아와 계속 협력하기를 원했다.
ABC뉴스는 이를 두고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면서 "러시아는 다음주 아세안지역포럼, 9월 유엔총회 등 주요 국제행사에서 배제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테러지원국 지정 시 러시아가 미 외교관을 모두 추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모스크바에 있는 미 대사관의 운영과 존 설리번 대사 등 일부 외교관의 체류를 허용하고 있다.
국무부의 브라이언 피누케인 국제위기그룹 선임보좌관은 "외교적 측면에서 미국이 다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이 문제로 민주당에게서도 압박을 받고 있다.
NYT는 "테러지원국 지정을 지지하는 일부는 러시아를 더 고립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은 정부가 테러지원국 지정에 나서지 않으면 의회가 나서겠다고 공공연히 발언해왔는데, 27일 상원이 낸 것과 유사한 결의안으로 하원 역시 표결을 준비 중이다.
withwi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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