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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OTT 넘자…토종 업체들 '적과의 동침'

매일경제 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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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OTT 넘자…토종 업체들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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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달콤하지만 해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 하도급 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해외 OTT 업체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국내 미디어 생태계에 과감한 '적과의 동침'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TV(IPTV)시장의 영원한 라이벌인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가 1000억원씩 총 3000억원을 조성해 "'오징어 게임'을 뛰어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는가 하면, 토종 OTT 플랫폼 간 파격적 흡수합병 결정까지 이뤄지고 있다.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공룡 넷플릭스를 상대하기 위해 합병을 통한 몸집 키우기를 시작한 것이다. 미디어 플랫폼 업계는 "제휴든 합병이든 자사 플랫폼 매력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그 어떤 선택도 감내해야 할 상황"이라고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IPTV 3사 간 '콘텐츠 공동 전략수급을 위한 업무협력'은 미래 생존에 대한 업계의 공포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국내에서 1800만가구를 시청자로 확보하고 있는 IPTV 3사는 이번 협약으로 3000억원의 콘텐츠 제작 실탄을 마련해 IPTV 생태계를 위한 오리지널 콘텐츠와 지식재산(IP) 확보에 쓸 계획이다.

IPTV 고객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해온 3사가 유례없는 협력에 나선 이유는 IPTV시장에서 콘텐츠 공급망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양질의 콘텐츠가 제작되더라도 IPTV를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OTT 플랫폼에 독점 공급되면서 IPTV 매력도가 크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세계시장에 노출시키려는 욕구가 크다"며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다보면 국내 미디어 플랫폼에서는 볼거리가 줄어 시청자의 콘텐츠 선택권이 약화되는 등 생태계 근간이 파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IPTV 3사는 이번 첫 콘텐츠 공동 수급전략을 통해 넷플릭스와 차별화한 '착한 계약'으로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백대민 한국 IPTV방송협회 미래전략팀장은 "해외 OTT가 국내 콘텐츠 제작사와 계약에서 사실상 창작자의 모든 권리를 가져가는 것과 달리 IPTV 3사는 창작자를 상대로 저작물에 대한 다양한 활용을 허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거대한 수익이 났지만 대부분 넷플릭스에 귀속되고 창작자들은 합당한 이익을 받지 못한 사례가 IPTV 3사 간 공동 협력의 생태계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15일 KT와 CJ ENM 간 OTT 플랫폼의 전략적 통합 결정 역시 해외 공룡 OTT와 맞서기 위한 극단적 승부수다. 지난 6월 기준 국내 OTT 월간활성이용자(MAU)는 넷플릭스(1117만명), 웨이브(423만명), 티빙(401만명) 순이다. 그런데 오는 12월 CJ ENM의 OTT 플랫폼인 티빙에 KT의 시즌(seezn)이 흡수합병되면 티빙의 국내 OTT시장 점유율은 단숨에 2위로 도약한다.

업계에 따르면 웨이브 모회사인 SK스퀘어도 CJ ENM과 웨이브 경영권까지 양보하는 방식으로 적극적 협력을 도모했지만 CJ ENM은 몸집 불리기의 최종 파트너로 KT와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종 OTT 1위 사업자인 웨이브보다는 하위 업체인 시즌을 흡수합병하는 게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게 CJ ENM의 판단인 셈이다.


경쟁 사업자와 공격적 제휴·합병을 선택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한 OTT 업계 인사는 "해외 공룡 OTT의 대규모 콘텐츠 투자로 제작 생태계가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결국 오징어 게임도 법률적 관계로 보면 한국인 제작진이 만든 미국 드라마"라며 "토종 OTT·IPTV 업계 입장에서는 현저히 부족한 자금과 인원을 서로 융합해 한국에 소유권이 귀속되는 글로벌 콘텐츠 성공 신화를 만들고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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