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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최태원표 탈탄소 전략에 美 광구 판 SK이노… 유가 급등에 패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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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탄소를 강조하는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의 의지에 따라 ‘탈탄소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해외 광구들을 팔아치운 김준 SK이노베이션(096770) 부회장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내외부에서 나오고 있다. 김 부회장이 알짜 광구들을 매각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자원 개발 사업의 가치가 크게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시기를 잘못 선택해 ‘헐값 매각’ 논란이 이는 데다,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민간 자원 개발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과도 정반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작년 3월 북미 셰일오일 개발 사업 법인인 ‘SK E&P 아메리카’ 법인을 청산했다. 이곳의 자회사인 ‘SK플리머스’와 ‘SK네마하’가 보유하고 있던 생산광구 지분과 자산 전체를 미국 벤치마크에너지에 매각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SK이노베이션은 매각 금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는 수천억원 규모일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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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S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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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4년 SK E&P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 오클라호마 그랜트·가필드 카운티의 광구 지분 75%와 텍사스 크레인 카운티 광구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어 2018년에는 SK네마하를 설립해 미국 셰일 개발 업체인 롱펠로우의 지분 전량을 인수해 가필드와 킹피셔 지역의 광구를 추가 확보했다. 이 기간에 SK이노베이션이 광구 매입을 위해 투입한 자금은 8720억원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이 북미 광구 매각을 통해 얻은 손익이 어느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점을 고려했을 때 ‘헐값 매각’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정유업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광구를 매각하거나 관련 투자를 멈춰 공급이 정체된 가운데 석유제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 광구 가치가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북미 E&P 사업 투자에 나서면서 “저평가된 광구를 사들이는 것은 저유가가 가져온 기회”라고 라고 말한 바 있다. 유가가 낮아지면 채산성이 떨어져 광구 가치가 낮아지지만, 반대로 유가가 높아지면 그만큼 광구 가치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SK이노베이션이 북미 광구 매각을 발표했던 작년 3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배럴당 62.4달러, 65.7달러였지만 올해 6월엔 114.3달러, 117.5달러로 크게 뛰었다.

SK이노베이션이 북미 광구를 사들였던 2014년의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고유가 시대였고, 2018년의 경우 60~80달러선으로 매각 시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광구 가치는 국제유가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며 “매각 시기를 조금만 늦췄다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의 북미 광구를 사 간 미국 벤치마크에너지는 해당 광구에 대해 “일일 석유·가스 생산량은 순 3600BOE(석유환산배럴)”이라며 “유정의 87%가 강력한 현금 흐름을 보이는 것은 물론, PDNP(시추돼 생산 대기 중인 매장량)·PUD(시추되지 않은 지역 또는 확실한 매장량) 기회로 인한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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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의 북미 광구 위치. '기존 SK 광구 지역'이 2014년 인수한 인수한 그랜트·가필드 카운티 광구이고, '인수 대상 광구 지역'이 2018년 롱펠로우로부터 인수한 광구다./SK이노베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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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자원 빈국인 한국은 에너지 공급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달 16일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민간 기업의 해외자원 개발 진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이달 5일엔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통해 민간 해외자원 개발 투자 활력 제고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추진한다고 재차 밝혔다.

SK이노베이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ESG 경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굳이 전략적 요충지인 북미 광구까지 팔았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불거지는 시점인 만큼 광구 매각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ESG 경영에 나서는 것이 나았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김준 부회장 역시 작년 7월 ‘스토리데이’에서 “우리가 카본 비즈니스(탄소 사업)를 하면서 사회에 (탄소 배출과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그걸 매각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냐는 문제가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원자재 공급망 안정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SK이노베이션은 남아있는 페루 광구에 대한 매각을 계속 시도한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9년부터 페루 88·56 광구의 지분(각각 17.6%)에 대한 매각을 진행했지만, 페루 정부의 매각 승인을 받지 못해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해당 광구의 가치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금은 페루 내부의 정치적 이슈가 해소되지 않아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페루 광구를 매각하겠다는 사업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fac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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