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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박항서 감독 오른팔' 동남아축구 전문가, 이태훈 감독을 만나다 [오!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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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12년간 동남아축구에서 헌신한 한국인 지도자가 있다. 바로 이태훈 감독이다. 지난 5월 귀국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태훈 감독을 OSEN이 만났다. 이 감독은 "내 축구인생의 불꽃을 태울 기회"라며 마지막 불꽃을 준비하고 있었다.

- 한국에는 정말 오랜만에 오셨는데 근황은?

▲ 시즌 후 짧게 휴식 차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시즌 중반에 여유롭게 있는 건 오랜만이다. 역시 나는 한국인 인가보다. 길거리를 걸어만 다녀도 좋고, 생활시스템이 동남아랑 비교했을 때 정말 좋다. 특히 동남아에서는 아직까지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아 지갑에 현금을 넣어 다닌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카드 결제가 되니 너무 편리하다.

- '동남아시아 전문가'라는 별명에 맞게 12년 동안 동남아시아 축구에서 지도자로 활약했다. 동남아 축구는 어떤 특징이 있나?

▲ 내가 지도자 생활을 한 곳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다. 두 나라 모두 각자의 고유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축구적인 부분에서도 차이점을 갖는다. 베트남의 가장 큰 특징은 협동심이 뛰어난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강하게 뭉치며 이러한 선수들 특징이 박항서 감독님의 지도력과 맞물려 대표팀이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생각한다. 2019년 3월 박항서 감독님 옆에서 대표팀 코치로 지냈을 때 많이 느낀 부분이다. 호앙아인잘리아(HAGL FC) 감독으로 지내면서도 나의 축구 철학을 확립해가는데 영향을 받았다.

반면 캄보디아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편이다. 역사적으로 침략과 지배를 많이 받다 보니 민족성이 소극적이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팀적으로도 정신력이 조금 떨어지다 보니 전반에 경기를 잘 풀어가도 후반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대표팀에 부임해서는 하나의 팀으로 뭉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던 기억이 있다. 기본적으로 캄보디아는 축구 인프라와 시스템이 여전히 부족하다.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왔지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바탕으로 계획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는 좋아지는 것 같지만 내부적인 문제를 등한시하는게 안타깝다.

-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총 두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캄보디아의 티피 아미 FC(Tiffy Army FC)와 비사카FC(Visakha FC) 생활은 어땠는지?

▲ 먼저 티피 아미FC는 국방부 소속의 팀이긴 하지만 국내 K리그의 김천 상무와는 다른 개념이다. 캄보디아 국방부에서 운영을 하는 하나의 축구팀이고 선수들의 신분이 군인은 아니다. 재정적인 부분이 많이 열악했지만 최근에 태국 사업가가 팀의 메인 스폰서로 들어오면서 여유가 생겼다. 그 때 마침 내가 FA로 캄보디아에 있었고 팀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게 됐다. 처음에는 팀 내부 사정을 잘 알기에 고사를 했지만 구단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팀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최종적으로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티피 아미FC에는 가능성이 있는 젊은 선수가 많았다. 그래서 구단측과도 계약 당시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를 보고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팀을 발전시키는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이 팀의 실질적인 오너는 국방부 소속의 고위관계자였다. 그는 이런 방향성을 인정하지 않고 당장의 결과만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시즌 중이었고 팀을 만들어가는 도중에 결국 연패를 하게 되자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다. 팀이 좋아지고 있는 와중에 계약 해지 소식을 듣게 되어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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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카FC는 캄보디아 내에서도 강팀에 속한다. 사실 티피 아미FC에 부임 전 비사카FC 회장이 계속해서 함께하자는 연락을 했었다. 두 팀을 놓고 고민을 했지만 나는 언제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의미 있게 감독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티피 아미FC를 선택했다.

티피 아미FC와의 계약 해지 이후에 회장으로부터 '우리는 우승을 원하고 그 적임자로 이태훈 감독을 생각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한번 더 캄보디아에서 도전을 선택하게 되었다. 2021년 12월에 팀에 합류했는데 이미 선수 구성이 끝난 상황이었다. 5명의 외국선수 선발작업도 마무리 되어있는 상태였고 이 자원들을 가지고 한 시즌을 꾸려 나가야했다. 하루에 두세 번씩 코칭스태프 및 운영진과 팀 방향성과 시즌 계획을 놓고 미팅을 진행했다.

시즌 시작을 한 달 남겨 놓고 코로나가 단체로 터져 버렸다. 선수단의 2/3정도가 코로나에 걸려 훈련을 진행할 수 있는 인원이 10명 남짓이었다. 개막 한달전에는 체력을 가장 많이 끌어올리고 전술적인 부분도 다듬고 확립하는 기간인데 그 시기를 다 놓쳐버렸다. 다행히 시즌 첫 경기를 승리했지만 시즌 초반에 주요 선수들의 부상으로 아웃 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개인적으로 축구 인생 중 가장 안 풀렸고 운도 없는 시기였던 것 같다. 이기고 지고 비기고를 반복하다보니 우승을 원하는 회장단에서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경기 전날 저녁에 문자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게 되었다.

- 비사카FC에서는 9경기에서 총 3승 1무 3패 성적을 거뒀다. 나쁘지 않은 기록인데 조금 팀에서 빠르게 나오게 된 것 같은데?

▲ 비사카FC의 회장단은 우승을 원했고 팀이 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요 선수들의 부상과 외국선수 5명 중 3명의 수준이 부족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감독 책임이 지게 되었고 소속사와도 의논을 통해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어 팀을 나오게 되었다.

사실 팀에서 있는 6개월동안 많이 힘들었다. 하루에도 리포트를 2~3개씩 작성해야 했다. 이런 불필요한 시스템이 너무 많이 있었다. 현장에서 선수들에게 쏟아야 할 에너지를 다른 쪽에 쓰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더 발전시키고 노력하려고 했고 할 만큼 했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지도자 커리어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경험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으려고 공부한 부분이 특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2010년부터 2017년 2월까지 캄보디아 국가대표팀도 이끌었다. 대표팀과 클럽팀의 차이는 어떤 점이 있나?

▲ 대표팀과의 클럽팀은 종목이 축구라는 공통점 빼고는 운영, 색깔, 방향성 등 지도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많이 있다. 첫 번째로 대표팀 같은 경우에는 선수 파악을 위해서는 그 나라의 민족성과 문화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팀을 구상하는데 있어서 내가 원하는 유형의 선수들을 보러 다니고 뽑을 수 있다. 훈련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고 결과에 대한 압박감도 크지만 좋은 퀄리티의 선수들로 구성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다.

클럽팀은 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캄보디아의 두 클럽은 선수 파악 보다는 팀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감독은 바뀌어도 코칭 스태프는 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코치들은 클럽의 회장 및 사장 라인을 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공무원 같은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국인 감독의 입장에서는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움과 어려움을 겪는다고 볼 수 있다.

-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지휘 시절 특별한 에피소드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 사실 캄보디아의 No.1 스포츠는 축구가 아닌 배구다. 내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만해도 국가대표 경기에 3,000명도 되지 않는 관중들이 들어왔다. 국가적인 측면에서 축구의 인기도를 끌어올리고자 미디어 측면을 많이 이용했다. 구단마다 미디어 팀들을 하나씩 만들었고 대표팀 역시 경기 홍보 및 팬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려고 했다. 2015년부터 라이벌 팀인 라오스에게 승리를 거두고 좋은 결과를 내기 시작하자 대중의 관심도가 커졌고 말그대로 축구 붐 시절에 경기장에 6만명 관중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번은 해외 대회에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수준 높은 팀과의 경기에서 1골차로 아쉽게 패한적이 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왜 선수들이 75분 지나면 뛰지 못하느냐 라는 질문에 나는 “평소에 못 먹기 때문이다. 아침에 쌀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머지 식사도 터무니없이 밥값이 낮다. 이런 부분을 개선해야 캄보디아 축구가 더 발전할 수 있지 않겠냐”며 당당히 이야기해서 선수들의 식비가 올라갔다. 더불어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전지훈련도 가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두 번째는 삭발 에피소드이다. 캄보디아에서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아들은 삭발을 하는 문화가 있다. 국제 경기를 앞두고 성적과 부족한 협회의 지원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던 시절이다. 미디어에서는 대표팀 위기론을 언급하기도 했고 스트레스로 인해 풍부했던 머리 숱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고 머리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는 협회 미팅이 있는 날이었는데 미팅 장소에 도착해 자리에 앉은 후 모자를 딱 벗으니까 협회 관계자들이 전부 놀랐다. 내가 모자를 딱 벗은 후 '캄보디아에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머리를 깍지 않냐, 지금 내 마음이 죽었다. 마음을 정비하고자 스스로 머리를 깎았다. 이 좋은 선수들을 가지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겠나, 훈련 환경을 높여주던지 전지 훈련을 더 좋은 곳으로 가서 팀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경기 전날 호텔에서 숙박도 하고 더불어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전지훈련도 가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캄보디아는 나에게 도움을 준 고마운 나라다. 다만 중간과정 없이 결과를 만들려고 하는 것 피해야 하고 기초를 탄탄하게 다진다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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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로서 향후 계획은?

▲ 아직 거창하게 한 생각은 없다. 일단 동남아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동남아스러운 모습을 벗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축구라는게 특별한 기술이 없지 않나. 선수들과 같이 경쟁하면서 같은 생각과 같은 플랜을 가지고 경기를 할 수 있는 팀을 지도하고 싶고 또 발전시키고 싶다. 다이나믹하고 조직적인 팀으로 만들어 경기를 보고 팬들이 볼 때 재미있는 축구를 하고 싶다.

- 국내팀 지도도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동남아에서 너무 오래 있다 보니 한국이 그리울 때가 많았다. 해외에서는 언어적으로 장벽을 많이 느껴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 힘들었다.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인 “소통”을 국내팀을 맡게 되면 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하고 있다. 꼭 국내는 아니고 전반적으로 두루두루 생각하고 있다. 팀을 선택할 때 그냥 가는 게 아니라 구단의 철학과 구단 오너의 마인드도 보면서 서로에게 맞는 팀을 찾고 싶다. 운영진과 코칭스태프 또한 소통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는 팀, 스토리가 있는 경기를 보여주는 팀을 만들고 싶다.

- 동남아 전문가로서 향후 동남아로 진출 준비를 하는 한국인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 요즘 동남아 쪽으로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지도자들이 많아지는 추세인 걸로 알고 있다. 먼저 항상 기억해야 하는 부분이 우리는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그 나라 문화를 공부해야 하고 팀 문화도 잘 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전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다. 더 좋은 한국인 지도자들이 동남아로 넘어가 축구 발전을 위해 힘쓰면 좋겠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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