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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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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살릴까 했던 ‘종이의 집’…한국 현지화 실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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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스페인 히트작 ‘종이의 집’ 리메이크

하회탈로 바꾸고 남북분단 설정 더했지만

원작 내용 거의 따라가면서 흥미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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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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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오징어 게임>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수 1위를 차지했고, 수많은 대중과 스타들이 <오징어 게임>에 나온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달고나’ 게임 하는 영상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도 아닌 드라마가 세계를 휩쓰는 것은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이기에 가능했다. 넷플릭스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현지화다. 한국, 스페인, 브라질, 벨기에, 남아공 등 낯선 나라의 영상물을 세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세계 표준의 영상물은 그동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였다. 중학생이면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에,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멜로와 액션을 황금비율로 섞으면 세계 어디에서나 잘 팔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블록버스터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물량이 부족하다. 할리우드 바깥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면, 성공할 확률은 줄어들지만 드물게 대박이 나오고 박리다매도 가능하다. 마니아들이 기본을 깔아주는 장르물이라면 가능한 전략이다. 벨기에의 <어둠 속으로>, 프랑스의 <뤼팽>, 독일의 <다크>, 인도의 <우리가 몰랐던 그녀> 등이 넷플릭스의 성공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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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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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현지화 전략, 최초의 대성공작이 스페인의 <종이의 집>(2017)이었다. 교수가 지휘하는 8명의 범죄자가 조폐국을 급습한다. 그들은 스스로 비상벨을 울리고 인질들과 함께 건물에 갇힌다. 교수의 목적은 4조원의 돈을 찍어서 빠져나가는 것. 단순한 강도질이 아니라, 탐욕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한 방 펀치를 날리겠다는 목적이다.

<종이의 집>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분명하다. 스페인 특유의 과잉 감정은 어쩔 수 없지만,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트릭으로 ‘케이퍼 무비’(강탈 영화)의 매력을 한껏 살렸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달리 가면을 쓰고 빨간 점프슈트를 입은 강도들의 형상도 눈에 띈다. 보통 강도사건에서 농성에 들어가면 시간이 흐를수록 범죄자들은 초조해지고 실수를 한다. <종이의 집>에서는 반대다. 돈 찍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의 예상을 역으로 이용한다. 경찰과 협상하는 교수는 조폐국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경찰을 속인다. <종이의 집>은 탁월한 아이디어로 시청자를 사건 속으로 빨아들이고, 스페인 내전에서 이어지는 고통의 역사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며 감정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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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의 원작인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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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리메이크해 지난 2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휴전 상태인 한반도의 통일을 가정한다. 2025년 극적인 남북회담이 열리고, 남북 왕래가 자유로워지며 공동경제구역도 건설된다. 2026년 9월, 교수 일당이 공동경제구역 내의 조폐국을 터는 설정이다. 한반도의 갈등은 세계적으로 통하는 소재다. 반드시 나오는 것이 남한과 북한 사람의 갈등이다. 독일에서도 실제 있었던 상황이고, 한국에서는 차별이 더 심각하고 치열할 것이다. 강도는 물론 인질 사이에서도 남과 북 출신에 따라 미묘하게 적대감이 있고, 서로를 감시하게 된다. 하지만 남북민의 갈등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스토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설정 외에는 원작 내용을 거의 따라간다. 초반 전개를 빠르게 하려고, 도쿄(전종서)를 화자로 내세워 상황을 설명하는 정도다. 그러나 도쿄는 사건을 끌어가는 인물이 아니다. 베를린(박해수)의 독단적인 행동이 문제가 되고, 교수(유지태)가 경찰의 수사를 방해하는 행동들이 펼쳐질 때 도쿄가 하는 일이 뭘까? 사랑에 빠진 덴버(김지훈)의 명령 불복종으로 시작된 갈등을 해소하는 정도다. 차라리 원작처럼 도쿄가 열정적인 사랑꾼인 게 나아 보인다. 이미 원작을 봤다면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다음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새롭게 추가되거나 기존 스토리를 비틀고 변주하는 것도 거의 없다.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라면, 기발한 스토리가 재미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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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의 원작인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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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은, 달리 마스크를 하회탈로 바꾼 것처럼 한국풍이 드러나는 감각이다. <오징어 게임>도 그랬듯, 한국 작품의 세트와 미술, 의상 등은 대단히 감각이 뛰어나다. 음악도 좋다. 한국의 영상물은 디테일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도 장르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성공적인 스토리를 가져와서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은 무척 잘하지만, 안에 채워야 할 장르적인 정서와 논리는 허술하고 조잡하다. 캐릭터들도 한국적 상황이 추가되었을 뿐, 대체로 가볍고 전형적이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을 보면서, 왜 리메이크했을까 궁금했다. 요즘 유행하는 케이(K)컬처에다 히트작 <종이의 집>을 더한다면, 원작을 안 본 시청자를 대거 끌어들일 것이라 생각했을까? 히트작을 타국에서 리메이크하는 경우는 많다. 감성과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여 현지화를 시킨다. 영화 <완벽한 타인> <내 아내의 모든 것> <독전> <감시자들> 등이 성공적인 해외 작품의 한국 리메이크다. <종이의 집>은 스페인의 정서가 강해서, 한국 시청자를 위한 각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원작을 본 사람이 적을 때만 유효하다. 배경 설정 말고는 새롭지 않은, 작품의 오리지널한 매력이 없는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실패한 리메이크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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