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어느 평범한 시골집. 초록색 대문을 들어서자 처마 밑에 작은 제비집이 사람들을 반겼다. 누가 들락날락하든 말든 어미 제비는 바쁘게 새끼 제비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얼마 전 죽음이 찾아온 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한 순간이었다.
50대 남성 종수(가명)씨는 얼마 전 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생을 마감했다. 20대에 고향을 떠났던 그는 올해 초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조선비즈는 종수씨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유품들을 특수청소업체인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와 함께 정리하며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지난 18일 오전 8시 유품정리 작업을 위해 종수씨의 집 앞에서 김새별 대표를 만났다. 고인을 위한 묵념을 하는 것으로 유품정리 작업은 시작됐다. 김 대표는 유품정리 자체가 고독사로 외롭게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50대 남성 종수(가명)씨는 얼마 전 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생을 마감했다. 20대에 고향을 떠났던 그는 올해 초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조선비즈는 종수씨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유품들을 특수청소업체인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와 함께 정리하며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지난 18일 오전 8시 유품정리 작업을 위해 종수씨의 집 앞에서 김새별 대표를 만났다. 고인을 위한 묵념을 하는 것으로 유품정리 작업은 시작됐다. 김 대표는 유품정리 자체가 고독사로 외롭게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오전 8시 30분쯤 종수(가명)씨가 고독사 한 방의 모습. /송복규 기자 |
종수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침대는 부패한 사체에서 나온 체액과 혈흔으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침대에는 구더기가 득실했고, 방 안에는 파리 떼가 날라다녔다. 이달 13일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종수씨는 나흘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 김새별 대표는 “오늘 고인의 집에서 나는 냄새가 다른 현장보다 훨씬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체액의 악취가 심할수록 고인이 죽은 채 방치된 기간이 길다는 의미다.
유품정리는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분류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고인의 시신에서 나온 체액이 묻은 이불류 등은 모두 검은 봉지에 담아 특수 폐기물로 따로 처리되고, 고인이 생전 가지고 있던 금품이나 유품은 하얀 바구니에 넣어 유족에게 전달된다.
집 안을 정리하던 중 종수씨가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입던 작업복이 나왔다. 작업복은 세탁하지 않은 채 가방 구석에 처박혀있었다. 종수씨는 작년에만 뇌경색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올해 들어서는 풍도 왔다고 한다. 몸이 쇠약해진 탓에 건설 현장에 나가는 게 불가능했다는 걸 구겨진 작업복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지난 18일 오전 8시 30분쯤 종수(가명)씨가 입던 작업복을 정리하고 있는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 /송복규 기자 |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종수씨는 밝고 붙임성 좋은 사람이었다. 이부형제(異父兄弟) 사이인 동생의 권유로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종수씨는 어르신들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항상 미소를 보였다. 종수씨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을 지켜본 마을 어르신들은 “안타까워서 어쩌나” “참 좋은 아이였다” 등 아쉬움 섞인 말들을 전했다.
마을 어르신들 앞에선 밝은 미소를 띤 채 있었던 종수씨였지만, 매일 밤이면 술을 친구 삼아 긴 밤을 보냈다. 종수씨가 머물던 작은 시골집에선 마시다 남은 양주와 소주 여덟 병, 고량주 두 병 등이 나왔다. 사망하기 이틀 전 주변 마트에서 소주 여섯 병을 구매하고 받아온 영수증도 집 안에 굴러다녔다. 고향에 내려와 혼자 살던 종수씨에게 고독사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고독사는 종수씨와 같은 50대 남성을 주로 표적으로 삼는다. 서울기술연구원이 서울시 고독사 사망 사건 978건을 토대로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를 조사한 결과, 남성 50~60대 고독사 사망 건수는 399건(40.7%)이었다. 중장년층 남성이 고독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중장년층 남성 고독사 가운데 ‘사인 불명’은 21.3%였고, 대부분 당뇨나 알코올 중독, 알코올성 간경변 등을 앓고 있었다.
그래픽=이은현 |
건강도 안 좋았던 그는 왜 술과 담배를 찾을 수밖에 없었을까. 침대 옆 서랍에서는 오래된 앨범 하나가 나왔다. 앨범에는 종수씨의 유년시절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의붓동생들과 고향 집에서 불안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종수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날 현실을 피해 아무도 모르게 고향을 떠났다.
종수씨는 ‘금의환향’한 것이 아니었다.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고, 경제활동도 어려웠다. 담배는 태우고 싶지만, 지갑 사정은 여의치 않아 2500원짜리 저렴한 수제담배를 샀다. 처음 고향으로 돌아와 주민들에게 환하게 인사했지만, 종수씨는 점점 집 안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종수씨는 세상에서 점점 고립됐다.
집 안에서 나오는 술병들을 정리하던 김새별 대표는 “뇌경색 수술을 받고, 풍이 왔으면 술을 먹으면 안 됐는데 안타깝다”며 “몸은 안 좋고, 우울감은 늘어가고 그러다 보니 술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독사라는 것이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당하는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18일 오전 8시 30분쯤 종수(가명)씨 집에서 발견된 영수증. 종수씨는 사망하기 이틀 전 마트에서 소주 6병을 샀다. /송복규 기자 |
고독사 예방을 위해 주로 언급되는 방안은 ‘고립감 끊어내기’다. 방에서 나오지 않아 고립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서울기술연구원은 고독사 예방 방안으로 ▲고독사 위험군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강화 ▲중장년층 1인 가구 등 돌봄사각지대 해소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관리 등을 제시했다. 고독사 사망자 대부분 기초수급자나 만성질환자, 주거취약지역 거주자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종수씨 집에서 유품정리와 특수청소를 하던 중 쉬고 있던 기자에게 옆집에 살고 있는 어르신이 “고생한다. 고맙다”며 음료수를 건넸다. 어르신은 “며칠 집에만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 때 (종수씨를) 불러볼 걸 그랬다. 불러도 불러도 응답도 없이 누워있는 모습이 마지막일 줄 누가 알았겠냐”며 슬픈 눈으로 집안을 훑어봤다.
송복규 기자(bgsong@chosunbiz.com);정재훤 기자(h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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