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누리호의 3300도 불꽃…대한민국 우주개척 門이 열린다[과학을읽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1957년 10월 옛 소련은 사상 최초로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을 발사해 인류를 우주로 이끌었다. 이로부터 64년여 후인 2022년 6월 대한민국이 첫 독자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완성에 나선다. 무려 2조원에 가까운 재정과 20여년의 세월, 고급 인력들의 피와 땀이 투자된 프로젝트다. 21세기 첨단 기술이 꽃피운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우주는 인류의 경제·안보·환경 등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발사체가 우리 위성을 궤도에 올리고 달·화성·소행성을 탐사해 개척하는 것은 곧 그 나라의 생존 기반을 스스로 갖추고 있다는 의미와 동일해지고 있다.

◇누리호의 의미는?

과거 냉전 시대엔 미국과 소련이 로켓 개발, 위성 발사, 달 탐사 경쟁에 나섰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SBM) 무기 기술 개발과 첩보·통신 등 국방·안보 외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미국이 아폴로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 최초 유인 달 착륙 탐사까지 실시했지만 손에 쥔 것은 없었다. 2000년대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첨단 기술을 동원해 우주 광산 개발, 우주태양광발전소 건설, 달·화성 개척 등을 통해 이득을 얻겠다는 민간기업체들이 대거 등장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구의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 등도 우주 개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미국이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해 달 탐사, 기지 건설, 터미널(루나게이트웨이) 구축 등에 나선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맞서 공동 달 탐사, 우주정거장 건설 등으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별 입지가 없었다. 1990년대 시작된 자체 위성 개발로 통신·관측 위성 제작 기술은 인정받았지만 국제적 우주 개발 협력 체제에서 독자적 우주 발사체가 없는 국가의 위치는 그만큼 좁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 첨단 기술에 우주가 필수적인 영역으로 포함되면서 각국의 경쟁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현재 우주발사체를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국가는 러시아, 미국, 유럽, 중국, 일본, 인도, 이스라엘, 이란, 북한 등 9개국이다. 이 중 이스라엘과 이란, 북한은 화물 수송 능력(페이로드)이 300㎏ 이하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누리호가 최종 성공할 경우 1.5t의 페이로드를 확보해 세계 7번째로 1t급 이상 실용 위성 발사가 가능한 국가가 된다.

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차 발사, 뭐가 다른가?

지난해 10월 누리호 1차 발사 당시엔 각 단 엔진 점화·분리, 페어링 분리 등 모든 작업이 정상 진행됐다. 그러나 3단부 7t급 액체 엔진이 예상보다 46초가량 빨리 꺼지면서 최종 목표인 위성 모사체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조사 결과 3단부 엔진 내 산화제 탱크에 균열이 생겨 연료가 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은 2개월가량의 원인 분석 작업을 거쳐 지난 1월부터 부품 설계 변경 및 검증 작업을 무사히 끝냈다.

이번 2차 발사 때는 위성 모사체만 실었던 1차 때와 달리 큐브 위성 4개가 포함된 성능 검증 위성을 함께 궤도에 올린다. 누리호 성능 검증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200㎏가량 무게의 실제 동작 위성으로 누리호가 고도 700㎞에 올라가게 되면 성능 검증 위성이 먼저 분리되며 나중에 위성 모사체가 분리된다. 초속 7.5㎞ 속도를 유지하고 무사히 분리되면 ‘임무 성공’이다. 또 분리 2시간 후까지 성능 검증 위성이 지상국과 지속적인 교신을 하고 4시간 후엔 남극 세종기지에서 위성 자세 정보를 확인한다. 고정환 KARI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장은 "우리나라가 만든 발사체를 자체 발사장에서 궤도에 올린다는 것은 우리가 만든 어떤 것이라도 우주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시아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핵심 4대 기술 모두 독자 개발

누리호의 불꽃 온도는 3300도가 넘는다. 하지만 외부 도움없이 자체적인 기술로 누리호를 완성한 우리 기술진의 피와 땀은 그것보다 더 뜨거웠다. 우선 발사체 추진력을 담보할 로켓 엔진 개발이 최우선 과제였다. 특히 핵심 부품인 터보 펌프를 만들어야 하지만 지식·경험·노하우가 없었다. 수백개의 밸브를 0.01초 단위까지 조율해 연료와 산화제를 정확히 공급하는 초정밀 장치이기 때문이다. KARI 연구진은 미국·러시아의 고전 교과서를 뒤지고 박물관에서 구형 로켓을 참고하는 등 열정을 불태웠다. KARI는 그나마 원리가 비슷한 항공기 가스 터빈 엔진 개발 경험자를 주축으로 5년 여 연구 끝에 2008년 개발에 성공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누리호 75t급 액체 엔진 개발 과정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엔진 크기가 커지면서 연소 불안정 문제가 발생했고, 2017년부터 약 6개월간 수차례 설계 변경과 실험 끝에 간신히 해결했다. 지난해 1차 발사 직전까지 33기의 시제품을 만들어 184회 1만8290초 동안 연소시험을 반복했다.

여기에 엔진 여러 개를 묶어 1개의 단으로 사용하는 ‘클러스터링(clustering)’ 기술도 자체 개발했다. 누리호 1단부는 75t 엔진 네 개가 하나로 묶여 300t급의 추력을 내는데, 정확히 정렬돼 있고 똑같은 힘을 내야 로켓이 목표한 경로로 비행할 수 있다. KARI 엔진 개발 관계자는 "엔진의 화염 가열 분석 및 단열 기술, 추력 불균일 대응 기술, 엔진 4기 조립·정렬·짐벌링(방향제어) 기술이 필요하다"면서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정교한 설계와 높은 수준의 지상 시험 수행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추진제 탱크 제작도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2~3㎜ 두께의 얇은 특수 알루미늄으로 발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내외부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히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리호 추진제 탱크는 대기압의 6배에 달하는 내부 압력과 엔진의 추력·대기의 저항으로 발생하는 강한 외력에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산화제로 쓰이는 액체산소의 영하 183도 극저온에도 견딜 수 있는 소재가 사용됐다.
아시아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주 발사체의 또 다른 고난도 기술인 ‘페이로드 페어링’도 난제 중의 난제였지만 무사히 극복했다. 위성 보호 덮개인 페이로드 페어링은 보호막 역할과 함께 목표 고도에 도착했을 때 정확한 타이밍에 알맞은 강도로 분리되어야 한다. 가볍고 단단한 소재 기술과 세밀한 노하우가 필요해 우주 강국들도 극비로 보호한다. KARI 기술진은 탄소복함섬유를 얇게 편후 열과 압력을 가해 강한 강도를 갖도록 했고, 분리시 충격(파이로 쇼크)을 해소하는 기술도 자체 개발했다.

◇누리호는 ‘마중물’

2조원짜리 누리호 사업은 일단 이번 2차 발사로 마무리 되지만 한국의 독자적 우주 개척을 위한 마중물이다. 정부는 누리호 발사체의 성능을 계속 검증하고 고도화하는 한편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향후 4차례 더 발사할 예정이다. 2023년에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를 탑재해 궤도에 올리는 임무를 띤다. 2024년, 2026년, 2027년에도 각각 반복 발사를 통해 신뢰도를 검증하고 초소형 위성 1호기 등을 궤도에 올릴 계획이다. 정부는 또 약 3조원을 추가 투자해 차세대 발사체 개발도 진행할 계획이다. 누리호 성능을 대폭 업그레이드해 국제 우주 발사체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고 달, 화성, 소행성 탐사 등 심우주 개척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KARI 관계자는 "한국형 발사체 기술의 지속적인 고도화 과정을 통해 우주 수송 능력 확장을 추진할 것"이라며 "체계종합기업을 발굴·육성하고 함께 성장하는 자생적 산업 생태계가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