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경오악의 북악이자 국가 중대사 논하던 사령지
"신라사 전환기 모습 잘 드러나 역사·학술적 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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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빼놓고는 신라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문화의 근간이 돼 정치체계의 안정을 가져왔다. 전환점은 이차돈(506~527)이 마련했다. 신라에 불교가 필요하다고 여겨 법흥왕 앞에서 순교를 불사했다.
"제 목숨만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커다란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지면, 부처님의 날이 다시 설 것이요, 임금께서 길이 평안하시리다(삼국유사)."
형리가 머리를 베자 흰 젖이 솟아났다. 참수된 목은 하늘로 날아올라 경주 금강산 정상에 떨어졌다. 법흥왕은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자추사를 세웠다. 지금의 백률사로 추정된다.
1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신라 불교의 성지인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일대는 백률사, 이차돈 순교비 등 신라의 불교 수용 역사를 품고 있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등 당시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문화재도 대거 분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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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신라 왕경오악(王京五岳)의 북악(北岳)이자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던 사령지(四靈地)이기도 하다. 국가 형성단계부터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특히 표암 유적은 6촌장이 만장일치로 박혁거세를 신라왕으로 추대한 신라 건국의 산실이다. 사후 안식처이자 의례 공간으로도 이용됐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탈해왕릉(사적)과 동천동 고분군이 꼽힌다. 매장공간이 도시 중심에서 주변 산지 구릉으로 이동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신성한 역사적 공간성과 불교 성지라는 상징성, 신라 의례의 장소성 등 신라사의 전환기 모습이 잘 드러나 역사·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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