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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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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신을 위한 작품"…정교한 신라 금박유물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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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제작 기법·용도 주목…"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

연합뉴스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나온 신라 금박 유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이건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요. 레이저 같은 현대 장비로 제작할 수 있는지도 실험해 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섬세한 무늬는 현미경을 보고 해도 못 만들어요. 불가사의할 정도의 작업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조각장 김용운 보유자는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나온 8세기 유물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에 대해 "현대 장인도 재현이 불가능한 작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6일 공개한 가로 3.6㎝, 세로 1.17㎝ 유물은 종이처럼 얇은 0.04㎜ 두께 금박에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0.05㎜ 선으로 새 두 마리와 꽃을 표현한 것이다. 약 20m 거리에서 유물 두 점이 각각 출토됐다가 보존처리를 거쳐 하나로 합쳐졌다. 전체 면적은 100원짜리 동전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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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나온 신라 금박 유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금박 유물을 본 전문가들은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는 점에서 "매우 정교하다"고 감탄했다.

한정호 동국대 교수는 "금속에 문양을 새긴 신라 유물 중에는 감은사 사리장엄구가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동궁과 월지 금박 유물은 더 세밀하다"며 "세계 고대 유물 중에 이렇게 문양을 정교하게 넣은 사례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유물을 '금으로 만든 종이에 그린 초정밀 신라 회화'로 정의하면서 "맨눈으로 문양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신을 위한 작품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고 추측했다.

첨단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신라인들은 어떻게 머리카락 절반 굵기로 그림을 그렸을까.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기본적인 도안을 구성한 뒤 드로잉을 하고, 그 선에 맞춰 망치와 정 등으로 문양을 새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 기법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유물이 작고 문양이 워낙 세밀해 구체적인 실행 방식은 미스터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경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선덕여왕이 사용한 화주(火珠·보배로운 구슬)라는 설이 전하는 분황사 출토 수정을 언급하면서 "수정이 볼록렌즈 같기는 하지만, 확대경 같은 유물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문양을 완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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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박 유물 출토 당시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신라 금박 유물에 얽힌 또 다른 의문은 용도다. 기물에 붙인 장식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용처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확언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순금으로 만든 장식물인 만큼 귀중하게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에는 대부분 동의했다.

주경미 충남대 강사는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물품의 손잡이 같은 곳에 마구리(길쭉한 물건의 머리 면) 장식으로 부착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커다란 금박에 문양을 새기고 일부만 오려낸 것이 발굴조사로 발견된 듯하다"며 "용도는 학계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금박 유물 뒷면에서 칠(漆) 같은 이물질은 나오지 않았다"며 "종교나 비현실적인 이상향과 관련된 용도로 쓰였을 수도 있다"고 짚었다.

유물 출토 지점인 동궁과 월지는 신라 별궁터다. 월지는 안압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이자 손님을 맞이하는 연회 공간으로 사용됐다고 전한다.

주 강사는 "통일신라시대 왕실은 매우 화려한 물품을 사용했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기록돼 있지만, 정작 불교 유물을 제외하고 화려한 생활용품은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금박 유물은 8세기 신라 왕실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실상 현존하는 유일한 금박 제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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