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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가짜뉴스 속 "어떻게 살면 좋을까?" 끊임없이 물으며 나아간다[김민정의 도쿄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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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무서운 것

가와카미 미에코

경향신문

올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는 한국과 일본, 인도, 노르웨이 작가들이 이름을 올렸다. 일본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의 <헤븐>도 최종 심사작 중 하나였다. 일본에서 부커상 후보가 된 두번째 인물이다. 수상은 놓쳤지만 영예로운 문학상의 최종 심사작 후보였다는 것만으로 그 명성은 더 높아가고 있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1976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아쿠타가와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등을 수상한 저명한 작가다. 최신작 <봄날의 무서운 것>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 2020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삼았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전염병이 시작된 직후, 아베 전 총리는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휴교령을 내렸다. 어떤 병인지 정확하게 알려지기 직전, 일본에는 결핵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코로나에 대한 미신을 적은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신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잘 모르는 전염병 앞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사실을 맹신하리라곤 이전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

스물한 살의 여자 대학생 도요는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 무료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인플루언서 모에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며 ‘좋아요’를 누르는 게 일과다. 모에샹은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그런 여성들을 파티에 소개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 ‘오로지 아름다울 것’, 아름다움이 돈과 직결된다고 믿는 모에샹을 도요는 살짝 동경한다. 도요는 모에샹이 다음 파티에 초대할 여성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껏 가공한 사진을 보내 면접을 본다. 얼굴 전체를 성형한 마를린도 같은 면접을 본다. 도요는 마를린의 얼굴에서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스미를 떠올린다. 과연 마를린은 스미일까? 이 면접에서 발탁될 여성은 도요일까, 마를린일까? 이 두 여성은 어떻게 될까. 독자 입장에선 면접에 붙어도 걱정, 안 붙어도 걱정이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도요의 심리묘사를 통해, 견고한 외모지상주의를 살아가는 요즘 세대 여성의 고민과 동경을 동시에 그려낸다.

한편 요시에는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깜짝 놀란다. 미사고 안나는 고교 동창생이자 미대를 다니며 연극배우를 꿈꾸던 젊고 아름답고 재능 있는 여성이었고 한때 요시에의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미사고 안나는 전화로 “상처 난 곳에 발라도 되고, 갓 태어난 아기도 쓸 수 있고, 요즘 유행 중인 감염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만능 오일”에 대해 소개한 후 “자연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미사고가 원래 가짜뉴스에 혹하던 사람이었던가? 요시에는 미사고의 20대를 떠올린다. 미사고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만난 열여섯이나 나이가 많은 남성과 연애를 했지만 결국 헤어졌다. 요시에는 미사고의 젊음과 미모가 착취당한 사건이라고 기억한다. 소설가를 꿈꾸는 요시에도 배우를 꿈꾸는 미사고도 20대에도 지금도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꿈을 좇는 일도 꿈을 포기하는 일도 쉽지 않다. 숨도 못 쉬고 달려왔는데 2020년에 팬데믹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경제가 축소되고 음식점이 문을 닫아 비정규직 고용자가 직장에서 밀려났다. 이 미지의 감염증과 정부의 무대책으로 인한 희생자는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미사고는 2020년 이후를 예고한다. 그럼에도 또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끊임없이 물으면서 말이다.

경향신문

김민정 재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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