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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5·18 당시 최규하 광주방문 ‘보안사 공작 문건’ 드러나···전두환 지시 3시간 뒤 광주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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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80년 5월25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를 방문, 광주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광주·전남지역 계엄군 지휘부와 악수하고 있다. 최 대통령은 계엄군 지휘부와 전남도지사만 만나고 담화문을 녹은한 뒤 돌아갔다. 최 대통령의 광주 방문은 보안사의 공작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기록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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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의 군인이 어둑한 비행장 활주로에 서 있다. 허리춤에 권총을 찬 군인은 우산을 펼쳤다. 비행기에서 내린 남성이 기다리고 있던 군인과 악수를 나눈다. 1980년 5월25일 오후 5시30분쯤 찍힌 광주공항 모습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 마중을 나온 사람들은 광주·전남지역 진압작전을 책임지고 있던 계엄군 지휘관들이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이 장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를 찾은 최 전 대통령의 도착 장면이다.

대통령 방문 소식에 당시 광주 시민들은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최 전 대통령은 계엄군 지휘부와 전남도지사만 면담한 뒤 ‘담화문’을 녹음하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갔다. 담화문에는 집단발포를 자행한 계엄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난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이성을 되찾고 냉정히 생각하라”는 ‘협박성’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이틀 뒤인 5월27일 새벽, 신군부 반란 세력은 공수여단으로 특공조를 편성 옛 전남도청 등 광주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계엄군은 ‘광주재진입작전(상무충정작전)’ 실시 이유 중 하나로 ‘각하(최 대통령)의 현지 방문’을 들었다. 열흘간의 항쟁으로 광주시민 354명(당시 사망 165명·상이후 사망 111명·행방불명 78명)이 사망했다.

경향신문은 42년 전 최규하 전 대통령의 광주방문이 5·18당시 전직대통령 전두환씨가 사령관이었던 보안사령부가 기획한 ‘공작’ 이었음을 증명하는 문건을 발굴했다. 5·18당시 보안사가 작성한 ‘각하 광주 현지 시찰 건의 요망’이라는 제목의 두 장짜리 문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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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발굴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기획한 1980년 5·18당시 보안사령부의 문건. 이 문건은 내용상 5월25일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최 대통령은 이날 실제 광주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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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건은 최 전 대통령이 광주를 직접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열거하고 있다. 문건은 “광주사태가 1주일간이나 계속되고 있는데 과거 예로는 이리역(익산역) 폭파시 또는 수해지역에도 각하가 현지 순시로 국민에게 안도를 줬다”면서 “폭도들의 선무에도 각하가 현지를 순시하는 경우 양민이 현혹되지 않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일요일이고 일기불순함에도 순시해 주신데 대한 광주시민과 국민들의 호응과 고마움으로 정부와 각하에 대한 충성심을 함양하는 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문건은 최 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한 5월25일 작성됐다. 문건에는 “순시는 오늘(5. 25)이 적기”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보안사가 대통령 광주 방문을 이날 기획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건처럼 당시 광주에는 비가 내렸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1980년 5월25일 광주지역 강수량은 26.1㎜였다.

대통령의 광주방문은 문건 작성이후 보안사령관 이었던 전씨의 결정과 지시에 의해 3시간 만에 실행돼, 당시 절대 권력자가 누구였는지를 보여준다. 전씨가 최 전 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결정한 것은 5월25일 오후 2시30분쯤 이었다.

5·18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주영복씨는 1996년 2월9일 검찰 조사에서 “(5월25일 낮 12시15분쯤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육군회관 오찬모임에서)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저에게 ‘광주재진입작전을 하기 전에 대통령을 찾아가 선무활동을 하도록 하라’고 해 대통령을 찾아가 승낙을 받고 광주에 함께 내려갔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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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발굴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기획한 1980년 5·18당시 보안사령부의 문건. 이 문건은 내용상 5월25일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최 대통령은 이날 실제 광주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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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의 지시 이후 대통령 광주방문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5·18당시 공군본부의 ‘공수상황일지’를 보면 공군에는 5월25일 오후 3시50분 ‘VIP 공수요청(CODE 1)’이 접수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항공기는 오후 4시29분 성남비행장을 출발해 오후 5시35분 광주에 도착했다.

보안사는 문건에서 최 전 대통령이 ‘광주에서 해야 할 일’도 제시했다. 문건은 “순시에는 아래 사항을 군에 지시해 주실 것을 건의(한다)”면서 “광주 변두리 영세민에 대한 구호양곡을 군이 주동이 되여 지원, 군 의료진의 대민진료 권장(을 통해) 국민의 군대로서 강경 일변도의 군대가 아님을 과시할 수 있도록 요망된다”고 적었다. 5월26일부터 정부는 광주에 구호양곡을 방출했다.

5·18연구자인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도청진압작전을 이미 결정한 신군부가 유혈 진압의 명분을 쌓기 위해 최 전 대통령의 광주방문을 기획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라면서 “최 전 대통령은 광주의 현실을 외면했고, 책임을 광주 시민들에게 떠넘겼다”고 밝혔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생전에 5·18당시 광주 방문에 대해 직접 진술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최광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1995년 최 전 대통령을 대신해 검찰에 제출한 입장문이 남아있다. 입장문에는 “대통령께서는 광주 시내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전교사 계엄분소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면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작전은 위험을 수반하는 것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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