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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러 침공에 길 끊겨 10분 거리 약혼자와 생이별…3700㎞ 돌아가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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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하르키우 외곽의 부서진 다리를 건너는 차량/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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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길이 끊겨 10분 거리에 있는 약혼자와 생이별을 하게 된 우크라이나 남성의 사연이 알려졌다. 이 남성은 러시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을 거쳐 3700㎞를 달린 끝에 약혼자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22일(현지 시각) 가디언은 프로 포커선수 세르히 베랴예프(32)가 러시아의 공격으로 길이 끊기자 10㎞ 거리에 있는 약혼자 나탈리아 드로즈드(28)를 보러 가기 위해 열흘에 걸쳐 벨라루스를 빙 둘러 돌아간 사연을 보도했다.

전쟁 이전에는 얼마 걸리지 않던 여정이다. 베라예프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외곽의 집에서 고속도로를 타면 금세 나탈리아와 부모가 있는 하르키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전에 다니던 도로는 이용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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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히르키우 외곽에 거주하는 베라예프가 약혼녀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 경로를 구글 맵에 표시한 것. /구글맵


베라예프는 아픈 어머니와 나탈리아를 만나러 가기 위해 러시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 등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달 4일 오후 1시쯤 다른 일행과 함께 차량 4대로 조직된 호송대에 합류해 70㎞를 달려 러시아로 넘어갔다.

검문소가 많아 험난한 구간이었다고 한다. 러시아군은 베라예프의 휴대전화를 검사하는가 하면, 속옷까지 벗겨 우크라이나군 관련 문신이 있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다. 베라예프는 전쟁 초기 참천한 친구들에게 러시아군의 위치를 보냈던 기록을 미리 지운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이후 여정도 녹록지 않았다. 표지판이 없는 도로에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 없이 계속 달려야 했다. 포격으로 파괴돼 차로 하나만 남은 다리를 간신히 건넜고, 도로 구멍에 바퀴가 빠져 차량이 망가지는 바람에 자가 수리를 하기도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5시간 동안 달린 끝에 러시아 국경을 넘은 이들은 인근 대도시 벨고로드로 방향을 정했는데, 그 직후 또 연방보안국(FSB) 검문에 걸렸다.

이들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16시간이나 걸려서 러시아·리투아니아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슈퍼마켓 밖에서 쪽잠을 자고, 맥도날드 매장에 도착해서야 처음으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한 뒤엔 일행들을 내려주고 일주일간 머물렀다. 당시 베랴예프는 코로나 증상으로 많이 아프기까지 했지만 나탈리아를 만나겠다는 의지를 계속 다졌다.

지난 14일 오후 인도주의 차량 행렬을 따라 다시 길을 떠난 베랴예프는 르비우를 거쳐 18일에는 키이우를 출발했다. 마지막으로 하르키우에서 약혼녀 집을 50m 앞두고 또 검문을 받긴 했지만 그는 결국 가족들과 나탈리아와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정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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