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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류현진 MLB 활약상

류현진의 아픈 손가락…이글스와 장민재의 간절했던 1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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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Ryu 아카데미’ 3명이 동반 호투한 하루 (15일)

[OSEN=백종인 객원기자] 분위기 안 좋다. 덕아웃 맨 뒷줄. 한숨 소리에 바닥이 꺼진다. 눈을 질끈 감고, 심각하게 자책한다. 직전 5회 초에 대한 후회다. 한동희에게 맞은 역전 투런 홈런 말이다. 그 고비만 넘겼으면 되는데. 2-1 우세는 한 순간에 2-3으로 뒤집혔다.

자책은 자학으로 이어진다. 뒷머리를 연신 벽에 찧는다. 쿵…쿵…쿵…쿵. 저래도 괜찮을까 걱정될 정도다. 아무리 정수리라도 그렇다. 소중한 모근(毛根)은 어쩌란 말이냐. (그는 얼마전 한 인터뷰에서 모발 이식 사실을 당당하게 털어놨다.)

그런 절망의 와중이다. 5회 말. 팀 타선이 힘을 낸다. 최재훈의 적시타로 다시 동점이다. 계속된 1사 만루, 정은원 차례가 됐다. 공손히 두 손 모은 표정이 카메라에 잡힌다. “종교는 없는데, 간절하다 보니 부처님, 예수님, 하느님 다 찾게 되더라구요.” (본 매체 이상학 기자 인터뷰 중에서)

불과 몇 분 후.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카운트 1-1. 정은원이 3구째 슬라이더를 들어 올렸다. 왼쪽으로 큼직한 포물선이 생긴다. 희생플라이겠지? 타구를 쫓던 전준우가 담장에 막혔다. 긴가민가하던 공은 펜스를 넘어갔다. 이글스 파크에 환호와 탄식이 뒤덮인다. 역전, 결승 만루홈런이다.

감격이 용솟음친다. 그는 나라 찾은 표정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목이 터지게 샤우팅이다.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포옹이다. 어디 한번으로 성에 차겠나. 졸졸 쫓아다닌다. 기어이 또 한번 깊게 안아준다. “니가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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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아웃에서 뒷머리를 찧으며 자책하던 장민재가 역전 그랜드슬램을 터트린 정은원을 끌어안고 감격하는 장면. / SPOTV 중계화면


서귀포의 시어머니 등쌀

지난 1월 초다. 서귀포 강창학 야구장에 몇몇이 모인다. 조합이 이채롭다. 인천에서 온 1명과 대전 주민 2명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멀리서 왔다. 캐나다 출신이다. 장민재, 김기탁(이상 한화)과 이태양(SSG) 그리고 영어권에서 온 Hyun Jin Ryu다. 공통점은 하나다. 전현직 이글스 투수들이다.

이를 테면 ‘류현진 아카데미’다. 벌써 몇 년 째다. 매년 12~1월 무렵에 소집 명령이 떨어진다. 비시즌 개인 훈련을 위해서다. 날씨 때문에 일본 오키나와 같은 곳을 돈다.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제주를 택했다. 기간은 2주였다.

맘 맞는 선후배끼리 적당히 쉬어가며? 천만에. 전담 트레이너가 붙는다. 웬만한 전지훈련 뺨치는 프로그램들이다. 스트레칭, 러닝, 웨이트 트레이닝, 어깨/팔꿈치 보강 훈련….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4, 5시는 돼야 끝난다.

게다가 시어머니 등쌀도 장난 아니다. 아카데미 원장이자, 4년 고참인 토론토 주민의 잔소리다. “야, 밸런스가 왜 그러냐.” “체인지업 그립이 이상한데.” “하체가 그게 뭐냐.” “니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다.” 야단 치고, 꾸짖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이글스) 구단에 보고도 한다. 한용덕 감독 시절이다. 시어머니는 훈련 영상을 찍어서 보낸다. 고자질도 보탠다. “얘들 체력이 영 아닌데요. 조금 더 굴려도 되죠?”. 흐뭇한 사령탑은 흔쾌히 OK다. “그럼, 더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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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에서 함께 훈련한 아카데미 멤버들. 왼쪽부터 이태양(SSG), 김기탁(한화), 류현진(토론토), 장민재(한화). / 장민재 인스타그램


아카데미 트리오 모두 호투한 하루

공교로운 일이다. ‘류현진 아카데미’ 트리오가 동시에 선발 출격했다. 어제(한국시간 15일)였다.

우등생 이태양은 호투했다. NC전에 선발 등판, 6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승리 요건도 갖췄다. 뜻밖의 역전패로 승수 추가에 실패했을 뿐이다. 그가 그나마 낫다. 부잣집으로 이사 간 뒤로 잘 풀린다. 이번 시즌 출발도 괜찮다. 벌써 3승이다. 팀도 1위로 잘 나간다.

Ryu 원장은 복귀전을 치렀다. 28일만의 컴백이다. 탬파베이전을 4.2이닝 1실점으로 막았다. 덕분에 한숨 돌렸다. 사실 그동안은 싸늘했다. 두 차례 등판서 탈탈 털려서다. 게다가 병가까지 냈다. 여론이 조용할 리 없다. 현지는 물론이다. 국내까지 부글거린다. 미디어들도 서서히 민낯을 드러낸다. 이번 투구로 비로소 진정되는 기미다.

남은 것은 아픈 손가락이다. 이글스의 장기 근속자(장민재)다. 그가 드디어 첫 승을 올렸다. 팀의 9연패도 끊었다. 만루홈런 정은원에게 “니가 날 살렸다”고 한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2020년 7월 7일 대전 롯데전 구원승 이후 677일 만의 승리다. 선발승은 더 거슬러야 한다. 2020년 5월 14일 대전 KIA전이 마지막이다. 무려 731일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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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첫 훈련 때 모습. 류현진은 다저스 소속이었다. / 류현진 인스타그램


군복무 마친 후 걸려온 선배의 전화

지난 2015년 겨울이다. 장민재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공익근무요원을 마친 뒤였다.

영어권 “지금 뭐하냐?”

모발이식 “집에서 그냥 쉬고 있는데요.”

영어권 “형이랑 같이 운동하러 일본이나 가자.”

모발이식 “형, 저는 아직 그럴 여력이 안되네요. 다음에 갈게요.” (형편이 안돼서 솔직히 말했다.)

영어권 “그냥 따라와.”

모발이식 (뭉클)

아카데미의 설립 과정이다. 야구에 진심인 후배들만 모았다. 장민재, 이태양이다. 물론 친정팀 동생들이다. 또 한 명 김진영이 있었다. 은퇴하면서 빈 자리가 생겼다. 그 자리에는 역시 좌완 김기탁(이글스)이 발탁됐다. 그리고 7년째다.

(장민재) "현진이 형이 저한테는 은인이예요. 지금까지 야구를 이렇게 할 수 있게끔 기반을 만들어준? 그런 형인 것 같아요.” (류현진은 현지에서도 장민재의 등판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본다고 밝힌 바 있다.)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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