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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우크라이나 전쟁과 '폰티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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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쿠바 수교 가교된 교황, 푸틴 설득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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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앞 광장에서 진행된 '십자가의 길' 예식 도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바티칸=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2014년 12월 17일 전 세계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타전됐다.

반세기 넘게 적대관계에 있던 미국과 쿠바가 전격적으로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것이다.

쿠바 공산혁명 후인 1961년 단절된 양국 외교관계가 53년 만에 복원되는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거의 같은 시간 긴급 성명을 통해 이를 발표했다.

일부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가 큰 역할을 했다.

미국과 쿠바는 2013년부터 비밀리에 국교 정상화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불신의 골이 깊은 터라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답답한 국면이 이어졌다.

교황은 이러한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자 2014년 초부터 막후에서 중재 외교를 가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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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전 전야 미사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촛불을 든 채 부활전 성야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2022.4.17 leekm@yna.co.kr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결단을 호소하는가 하면 양국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접점을 찾도록 도왔다.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과 언어·문화·종교적 정서를 공유하는 쿠바는 물론 미국도 교황의 중재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먼저 교황의 막후 중재 역할을 요청했다는 얘기도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존재가 교황의 중재 노력에 힘을 실어준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 쿠바는 대사관 재개설 등을 위한 추가 협상을 거쳐 국교 정상화 선언 6개월 뒤인 2015년 6월 말 수교에 합의하며 외교관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2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한 번 국제적 갈등 해결을 위한 중재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평화 정착이 핵심 화두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래 교황은 공식 석상에서 거의 빠짐 없이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파해왔다.

단순히 메시지만 전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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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바티칸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타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교황은 최근 이탈리아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지난 3월 중순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모스크바에서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다고 공개했다.

전면에 나서 전쟁 종식과 평화를 설파하면서 이면에선 재차 비밀리에 중재 외교를 시도한 셈이다.

교황은 이 인터뷰에서 모스크바에 가고 싶다는 뜻을 세 차례나 반복해서 강조했다. 미국-쿠바 수교의 마중물이 됐듯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 간 평화협상으로 가는 가교 구실을 자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실린 것으로 해석됐다.

교황은 푸틴 대통령의 답변을 계속 기다린다면서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중재 노력을 그치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결국 무산되긴 했으나 내달 중순 예정됐던 레바논 방문을 계기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와 회동하기로 계획한 것도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게 교황청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 대통령과 매우 가깝게 소통하는 러시아 쪽 인사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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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쿠바 아바나에서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 총대주교(오른쪽)를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전체적인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선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푸틴 대통령의 평화 협상 의지가 미약한 상황에서 교황의 중재 노력이 끼어들 틈은 그리 넓지 않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푸틴 대통령은 이른바 '특별 군사 작전'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공세를 멈추지 않겠다는 점을 여러 차례 대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중재가 작동할 여지를 높여주는 상대국과의 정서적 동질감도 7년 전과 같지는 않다. 동유럽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한 정교회는 로마가톨릭과 뿌리를 같이 하면서도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을 인정하지 않는 등 교리상으로는 다소간의 차이를 보인다.

특히 보편적 신앙·진리를 추구하는 로마가톨릭과 달리 민족주의·국가주의 성향이 강해 종종 다른 기독교 종파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키릴 총대주교가 서방 언론에서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종종 언급되는 것도 이런 종교적 특성과 무관치 않다.

바티칸의 한 사제는 "교황의 중재 의지가 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다고 본다"면서 "가톨릭 국가인 쿠바와, 가톨릭 신자 비중이 20%인데다 실세 부통령이 가톨릭 신자였던 미국 사이를 중재한 당시와 지금은 여건이 다르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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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아조우스탈 제철소 내에 포위당한 아조우 연대 병사의 부인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의 정신적 지주이자 '신의 지상 대리인'으로도 불리는 교황은 도덕적·종교적 권위를 토대로 굴곡진 세계사의 분기점마다 흐름을 바꿔놓은 역할을 해왔다.

현대사만 보더라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해소, 1980년대 동유럽 공산 정권 붕괴 등의 예가 있다.

특히 국제 분쟁 중재에는 특별한 노하우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란-이라크 전쟁, 레바논 내전, 보스니아·코소보 내전 등엔 모두 교황의 직·간접적인 중재 노력이 있었다.

교황의 중재 외교는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그 뿌리가 깊다. 교황을 뜻하는 라틴어 '폰티펙스'(Pontifex)가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옛소련 붕괴 후 한동안 유지된 국제 지정학적 구도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을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교황은 어떤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까.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교황의 중재 외교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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