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넷플릭스 주가에는 날개가 없었다. 19일(현지시간)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시간 외 거래에서 25.8% 하락한 데 이어 이튿날 장이 열리자 35%까지 급락했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넷플릭스에 대한 경고등을 켜자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탓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서 넷플릭스 주가는 전날보다 35.1% 하락한 226.19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장중엔 최대 39%까지 추락했다. 2004년 10월 이후 18년 만에 하루 최대폭 하락이다. 이날 하루에만 시가총액은 540억 달러(약 67조원)가 증발했다. 52주 신저가 기록도 새로 썼다. 올해에만 62.5% 하락한 셈이 됐다.
전날 넷플릭스가 1분기 유료 회원이 지난해 4분기보다 20만명 줄어들었다고 발표한 뒤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넷플릭스 측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현지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70만명의 가입자를 잃었다고 설명했지만, 250만명 이상 가입자 수 증가를 예상했던 투자자들을 돌려세우진 못했다.
JP모건은 “향후 몇 달 동안 넷플릭스가 신저가를 기록할 수 있다”며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수정하고 목표 주가를 605달러에서 300달러로 낮췄다. 웰스파고도 목표 주가를 600달러에서 300달러로 내렸다. 보케캐피털파트너스는 “넷플릭스의 폭락은 성장하던 기업이 성장성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자유 낙하한 주가에서 엿볼 수 있듯, 넷플릭스에 대한 시장의 시선은 차갑다 못해 싸늘하다. 블룸버그는 이날 “오늘은 넷플릭스 창립 이후 최악의 날”이라며 “지난 몇 년간 시장에 환희를 안겨준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그룹에서 넷플릭스가 '추락한 천사(fallen angel)'가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월 넷플릭스 저가 매수에 나섰던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최고경영자(CEO) 마저 등을 돌렸다. 애크먼은 주주 서한에서 “잘못된 투자 결정을 했을 때는 최대한 신속하게 반응해야 하는 만큼 올해 초부터 매입한 넷플릭스 주식 310만주를 모두 매각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애크먼이 4억3500만 달러(약 537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애크먼은 가입자 감소에 대한 넷플릭스의 대책에도 "앞으로 매출과 구독자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전날 “계정 공유를 단속해 가입자를 늘리고 광고 기반의 새로운 저가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계정 공유 단속과 광고 기반 모델 전환이 2024년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넷플릭스의 앞날에 드리운 먹구름은 한둘이 아니다. 글로벌 OTT(콘텐트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경쟁 심화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넷플릭스의 향후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1월 "아마존, 훌루 등 경쟁 업체들이 OTT 사업을 강화하면서 향후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디즈니+, HBO Max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소비자가 구독료에 민감해졌다”며 “특히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소비자가 생필품이 아닌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줄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경쟁업체가 각종 할인 정책으로 낮은 구독료를 유지하는 가운데 넷플릭스는 지난 1월 구독료를 인상했고, 미국 등에서 가입자 이탈이 발생했다.
치열해지는 가격 경쟁을 뒷받침할만한 강력한 콘텐트의 약화도 넷플릭스가 풀어야 할 숙제다. 뉴욕타임스(NYT)는 넷플릭스가 다른 OTT 플랫폼과 차별화될 만큼 독창적인 콘텐트를 계속 만들어내지 못하면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KB증권에 따르면 디즈니+의 올해 콘텐트 제작 예산은 330억 달러지만, 넷플릭스는 190억 달러에 불과하다.
NYT는 지난 20일 "넷플릭스의 보유 작품 수는 거의 비슷한 반면 HBO Max와 디즈니+는 급격한 성장을 하고 있다"며 "애플TV+에서 방영되는 '세브란스'나 아마존이 내놓을 '반지의 제왕 프리퀄' 만큼 강력한 콘텐트를 넷플릭스가 확보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영화감독 마이클 샴버그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가입자 증가율이 낮아져서 제작 예산을 줄이도록 강요받는다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작업은 결국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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