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검찰, 국회 존중하고 자기개혁·자성해야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김 총장을 만나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검찰 수사가 항상 공정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법제화와 제도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문 대통령은 김오수 검찰총장에 대한 신뢰를 표하고, 검찰총장은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으니 임기를 지키고 역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검수완박 논란에 대해 “국회의 시간”이라며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김 총장이 “직을 걸겠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지난 14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통해 문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을 때에는 사실상 면담을 거절한다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날 문 대통령이 김 총장을 만나기로 결정하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민주당을 향해 속도 조절을 주문하려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고 하나마나한 양비론을 냈다. 국회 172석을 가진 민주당은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한 뒤에는 대통령이 가진 ‘거부권’을 행사해 법 시행을 무력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퇴임 전 마지막으로 주재하는 다음 달 3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법안을 공포하고 퇴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이 원하는 결정을 해주길 바라겠지만,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퇴임 후 출범하는 ‘새 권력’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고심이 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양비론으로 가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이 어느 쪽이든 확실한 입장을 내서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날 문 대통령과 김 총장 면담 결과를 두고 “기대에 못 미치는 입장”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문 대통령이 검수완박 법안의 문제점은 뒤로하고 검찰의 공정성만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한 부장검사는 문 대통령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했던 이력을 가진 법조인으로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통과되도록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문 대통령도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역사 앞에 죄를 지은 공범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긍정 신호로 해석하는 검사도 있었다. 한 지청장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김 총장이 대안을 제시했다는 걸 청와대에서 언급한 건 검찰 얘기를 그래도 좀 들어주겠다는 입장 아닐까”라고 해석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이날 국회 법사위 소위를 열어 ‘검수완박’ 관련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상정하며 강행 처리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검찰은 물론 법조계와 학계, 민변과 참여연대까지 강행 처리에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법안 발의 뒤 2주 안에 모든 절차를 매듭짓는 ‘속도전’을 선언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주 법사위를 거쳐 다음 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변수도 있다. 국회 박병석 국회의장이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미국·캐나다 순방을 떠나 자리를 비울 예정이고 법안이 본회의에 오를 경우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민주당 관계자들은 “의장 부재 시 부의장이 본회의를 열 수 있고, 필리버스터는 정의당과 협력해 강제 종료에 필요한 180석을 확보하거나 ‘회기 쪼개기’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법안 처리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김아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