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 사저 찾아 50분 회동… 두 사람이 직접 만난 건 처음
尹 “朴정부 업적 제대로 알릴 것” 朴 “좋은 대통령으로 남아달라”
尹 “박정희때 국정 배우는 중” 朴 “대통령은 무거운 자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이날 50분간 대화를 나눴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특검 수사팀장과 피의자 신분이었던 두 사람이 직접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선인 대변인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50분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아무래도 지나간 과거가 있지 않나”라며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음속으로 가진 미안함, 이런 것을 말씀드렸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가급적 윤 당선인 취임식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후 2시 박 전 대통령의 대구 달성군 사저에 도착해 박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윤 당선인 측에선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 측에선 유영하 변호사가 배석했다.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커다란 짙은 갈색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과 어떤 대화를 나눴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박 전 대통령님 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며 “대통령님이 지금 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 회동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2016년 국정 농단 사건 특검 수사팀장과 피의자 신분이었던 두 사람이 직접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을 처음 보지만 TV 화면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아주 오래전에 만난 사람 같다”고 했다고 한다. 권 부위원장은 “두 분이 뵌 일이 사실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어색한 만남에서 정말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얘기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의 내용이 굉장히 많았다”며 “그 내용을 일일이 다 얘기해 드리지 못하는 걸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당선인이 과거 특검과 피의자로서의 일종의 악연에 대해 굉장히 죄송하다는 말을 하셨다”고 했다.
유 변호사도 “두 분 간 대화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당선인께서 (박 전) 대통령께 ‘참 면목이 없습니다. 그리고 늘 죄송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며 “(윤 당선인이) ‘대통령 재직 중 정책과 업적을 보면서 왜 국민들에게 제대로 홍보가 안 됐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취임하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감사하다는 뜻을 표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이날 박 전 대통령에게 다음 달 10일 대통령 취임식 행사 참석도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권 부위원장은 “당선인께서 박 전 대통령께 취임식 참석을 정중히 요청하셨고 박 전 대통령께서도 가능하면 참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건강 상태로는 자신이 없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최대한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이 병원 진료차 서울을 오갈 때 불편이 없도록 경호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최대한 갖추겠다는 뜻도 전했다고 한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대구 발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하시면서 좋은 대통령으로 남아 달라고 하셨다”며 “이에 당선인께서는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린다고 하셨다”고 했다.
회동 배석한 권영세·유영하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을 처음 보지만 TV 화면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아주 오래전에 만난 사람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왼쪽부터 윤 당선인,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 유영하 변호사,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서로 ‘대통령직’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당선인에게 “일단 당선인 시절부터 격무일 것”이라며 “건강 잘 챙기시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내각과 청와대를 어떻게 운영하셨는지에 대한 자료도 보고 당시 근무한 분들 찾아뵈면서 배우고 있다”며 “당선되고 나니 걱정돼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무겁고 (책임이) 크다. 정말 사명감이 있었다”며 “일단 건강 많이 챙기시고 건강해야 격무를 소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튼튼한 외교·안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외교·안보 울타리가 튼튼해야 우리나라 경제도 발전한다”며 “(경제는) 국내에서 (우리나라) 혼자 하는 시대가 아니고 여러 나라와 신뢰를 맺어 ‘윈윈’(상생)해야 나라가 발전하는 시대다. 안보도 경제도 신뢰 속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이날 회동 내내 박 전 대통령은 말을 비교적 많이 했고 자주 웃었다고 한다. 당선인 비서실이 공개한 회동 사진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미소를 머금은 표정이고, 윤 당선인은 두 손을 모은 채 박 전 대통령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었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 얼굴이 다소 부은 모습에 우려를 표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과거 유세 현장에서 얼굴에 테러를 당한 사건도 언급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선거전에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기를 받아 힘을 냈다는 점도 공통 화제로 얘기했다. 이날 회동 자리엔 민트차와 한과가 다과로 올랐고 윤 당선인은 한과를 거의 다 먹었다고 한다.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서로 ‘악연’으로 얽혀 있다. 윤 당선인은 2017년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뇌물죄 관련 대기업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4팀장 겸 총괄수사팀장을 맡았다. 당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과 벌금1185억원을 구형했다. 윤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국회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가 좌천당하기도 했다.
이날 대구 달성군 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는 15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윤 당선인의 방문을 기다렸다. 사저 인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달성군 방문을 환영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최고 온도 30도에 달했던 날씨로 인해 시민들은 사저 인근 언덕의 나무 그늘 밑에서 돗자리를 깔고 더위를 식히며 준비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울산에서 온 양윤숙(62)씨는 “혹시 주차할 곳이 없을까봐 아침을 빨리 먹고 오전 9시쯤 도착했다”며 “윤 당선인이 박 전 대통령 탄핵 관련으로 마음의 빚이 있을 텐데도 먼저 찾아와 소통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대구 달성군에 거주하는 김모(43)씨는 “당시 윤 당선인 직무가 검찰이었고, 위에서 시키니까 자기 직무를 한 거 아니겠나”라며 “박 전 대통령도 마음이 없으면 (윤 당선인을) 안 만났을 텐데, 서로 화해하고 앙금을 풀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해에서 온 박윤철(67)씨는 “윤 당선인이 먼저 다가오고, 박 전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이 모습이 바로 국민이 바라던 통합과 화해의 정치”라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이 ‘탄핵 무효, 명예 회복’이라 쓰인 팻말을 손에 들고 박 전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윤 당선인을 향해 “탄핵 사죄하라”고 외치기도 했으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이날 300명을 배치해 사저 인근을 통제했다.
[김민서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