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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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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패러디한 BTS… 수상 못했지만 ‘숨은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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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그래미 시상식

4년째 이어진 방탄소년단(BTS)의 그래미 수상 도전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그래미에서 BTS는 사실상 ‘숨은 주인공’이었다.

3일(현지 시각) 오후 5시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는 제64회 그래미 어워즈가 열렸다. 시상식 초미의 관심사는 단연 ‘BTS’ 수상 여부. 아시아권 대중음악 가수로는 최초 수상이자, 미국 3대 음악상(빌보드·아메리칸뮤직어워즈·그래미) 그랜드슬램 달성이 눈앞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클래식 부문과 엔지니어상 부문에선 소프라노 조수미(1993년)와 리코딩 엔지니어 황병준(2012년·2016년)이 수상한 바 있다.

BTS는 지난 2019년 시상자로 무대에 선 이후 4년 연속 그래미 문을 두드렸다. 퍼포머(performer)로는 올해가 3년 연속 참여다. 올해는 지난해 빌보드 핫100 10주 연속 1위곡 ‘버터’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지명됐다. 2년 연속 후보였지만, 결국 수상 영예는 지난 한 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키스 미 모어’의 도자 캣·시저에게 돌아갔다.

다만 이번 BTS 수상 불발이 백인 수상자에게 상을 몰아주는 ‘화이트 그래미’ 탓은 아닐 거란 분석이 나온다. 앞서 그래미를 주관하는 리코딩 아카데미(NARAS)는 심사 기준 논란을 피하고자 올해 처음으로 기존 ‘비밀 위원회’를 없애고 회원 전체 투표로 후보를 지명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4대 본상도 필리핀계와 한국계 혼혈, 흑인 등 다양한 수상자에게 돌아갔다.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버터는 트렌디하지만 가벼운 틴팝 성격에 지난해 BTS 활동 자체도 적었다”며 “보수적인 그래미 문턱을 넘기엔 음악적 성과가 사실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평했다.

조선일보

제64회 그래미 4대 부문 수상자


◇그럼에도 ‘시상식’ 주인공은 ‘BTS’

보수적인 그래미가 BTS에게 상을 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BTS를 시상식의 ‘숨은 주인공’으로 대우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그래미는 이전까지 사전 시상식에서 미리 주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을 올해는 본 시상식 무대로 옮겼다. 수상 발표 또한 막바지인 3부까지 뜸을 들여 BTS가 계속 자리를 지키도록 했다. 도자 캣과 시저가 BTS 대신 수상 소감을 말할 때도 그래미 실황 중계 카메라는 반복적으로 BTS를 비췄다. “그래미가 BTS로 시청률 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그만큼 그래미가 BTS의 출연 자체에 큰 비중을 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날 사회를 맡은 미국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가 참석자들의 자리를 직접 찾아가 짧은 인터뷰 시간을 가진 것도 BTS뿐이었다. 노아는 특히 “프렌즈가 제 영어 부모님”이라는 RM의 말에 “나도 그럼 한국말을 배워보겠다”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대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한국어로 따라해 장내 웃음을 자아냈다.

가장 압권은 영화 ‘007시리즈’를 패러디한 BTS의 ‘버터’ 무대였다. 공연 시작부터 멤버 뷔가 이날 그래미 신인상을 탄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 귓속말을 하자 객석은 환호를 보냈다. 비밀요원을 연상케 하는 옷차림으로 BTS가 블랙 재킷을 활용한 화려한 퍼포먼스를 끝마쳤을 땐 기립박수가 터졌다. 이날 미국 대중음악지 빌보드지는 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연 14팀 순위를 매기면서 BTS를 1위로 꼽았다. 올해 그래미 대상 격인 ‘올해의 레코드’ 수상자 실크소닉은 14위였다.

◇'반전’과 ‘위로’ 노래한 그래미

이날 BTS와 함께 주목받은 또 하나의 그래미 공연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미국 팝스타 존 레전드의 협연이었다. 녹화된 영상으로 참여한 젤렌스키는 “우리 음악인들은 턱시도 대신 방탄복을 입는다”며 “(러시아 폭격으로) 우리 땅을 가득 채운 죽음 같은 정적을 당신들의 노래로 채워달라”고 호소했다. 존 레전드가 ‘자유의 비가 내리게 하라(Rain down, Freedom)’는 가사가 담긴 자신의 신곡 ‘프리’를 우크라이나 출신 가수, 시인과 함께 노래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날 시상식이 종료된 후 BTS와 리더 RM은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솔직히 기분 안 좋은 게 팩트”라면서도 “오늘 슬프고 내일 괜찮으면 된다.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고, 좋은 퍼포먼스 영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BTS는 오는 8~9일(이하 현지 시각), 15~1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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