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물 연상시킨 단독무대에 기립박수
4대 본상은 실크 소닉·존 배티스트 등
비백인·여성에게…‘화이트 그래미’ 오명 벗어
방탄소년단이 3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64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버터’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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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은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손가락을 다친 진이 기계 가득한 통제실에서 뭔가를 조작하자 정국이 천장에서 줄을 타고 무대 위로 내려왔다. 뷔는 빌보드 차트에서 경쟁했던 가수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귓속말을 나누다 네모난 카드를 꺼내 날렸다. 곧이어 객석에 앉아 있던 멤버들이 다 함께 무대로 뛰어올라 ‘버터’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첩보물 영화 주인공이 된 듯한 퍼포먼스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을 떠올리게 했다. 댄스 브레이크, 재킷을 활용한 기타 연주 퍼포먼스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무대가 끝나자 아티스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방탄소년단은 3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엠지엠(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64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멋진 단독무대를 선보이며 수상의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끝내 ‘그라모폰’(축음기 모양의 그래미 트로피)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방탄소년단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트로피는 도자 캣과 시자(SZA)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로 호명된 도자 캣과 시자는 “여러분들이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방탄소년단은 객석에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냈다.
방탄소년단이 3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64회 그래미 어워즈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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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지민은 시상식이 끝난 뒤 네이버 브이(V) 라이브 방송에서 “(그래미) 상을 받으면 아미(방탄소년단 팬덤)에게 보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컸는데 조금 아쉬웠다”고 했다. 리더 알엠(RM)은 “기분 안 좋은 건 팩트다. 오늘 슬프고 내일 괜찮으면 된다”고 말했다. 슈가는 “그래미에 노미네이트(후보 지명) 된 것만 해도 벌써 두번째인데 (이번 결과로) 슬퍼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멤버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그래미 4대 본상 중 ‘올해의 노래상’과 ‘올해의 레코드상’은 실크 소닉의 ‘리브 더 도어 오픈’에, ‘올해의 앨범상’은 존 배티스트의 <위 아>에, ‘올해의 신인상’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 돌아갔다. 재즈 음악가 존 배티스트는 5관왕에 오르며 이번 그래미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이 결성한 실크 소닉은 4관왕, 미국 대중음악계의 샛별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3관왕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어머니 박씨의 성을 물려받은 한국계 미국인 래퍼 앤더슨 팩은 올해의 레코드상 트로피를 받은 뒤 “최대한 겸손해보겠다. 하지만 저희가 중요한 상을 다 쓸고 가지 않았나. 여러분 정말 사랑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그래미는 영어권 중심의 백인 남성 가수를 우대하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비판받아왔다. 미국 3대 음악상 가운데 가장 오래됐고, 음악성을 최우선으로 두지만, 다양성엔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화이트 그래미’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이런 비판을 반영한 듯 이번 시상식 본상 4개 부문은 흑인 등 비백인과 여성에게 돌아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64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영상을 통해 깜짝 등장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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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상식에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영상을 통해 깜짝 등장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젤렌스키는 영상에서 “우크라이나에는 더 이상 음악이 흐르고 있지 않다. 음악의 반대인 죽음의 적막만이 흐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 뮤지션들은 턱시도가 아닌 방탄복을 입고, 병원에서 부상자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며 “우리 삶에서 더 이상 음악이 빠지지 않게 도와달라. 이런 상황을 에스엔에스(SNS) 등에 많이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메시지가 끝난 뒤 미국 싱어송라이터 존 레전드는 우크라이나 가수 미카 뉴턴과 함께 전쟁 종료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노래 ‘프리’를 열창했다. 무대 뒤로는 러시아 침공으로 신음하는 우크라이나의 사진과 영상이 나왔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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