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거주하는 여학생들이 새 학기 첫날인 23일(현지시간) 등교하고 있다. 탈레반 교육부는 이날 등교가 시작된 지 몇 시간 만에 갑자기 여중·고생의 등교 일정을 순연하겠다고 밝혔다. |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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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순부터 여중·고생의 등교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던 탈레반 정부가 새 학기가 시작한 23일(현지시간) 이들의 등교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 정부 교육부는 새 학기 첫날인 이날 등교가 시작된 지 몇 시간 만에 여중·고생들의 등교는 다음 고지가 있을 때까지 연기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여학생들의 복장과 관련해 정부 지도자들이 결정을 내린 후 학교 문을 다시 열겠다”며 샤리아(이슬람 율법)와 아프가니스탄 전통에 따라 복장을 정하겠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아프간 여학생들은 등교한 지 몇 시간 만에 눈물을 흘리며 집에 돌아가야 했다. 수도 카불에 있는 여자중학교를 다녔던 파티마는 귀가하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그저 공부하고 싶을 뿐인데 그게 죄라도 되냐. 탈레반이 항상 말하는 이슬람 율법은 여성들을 이런 방식으로 해하라고 하냐”며 울분을 토했다. 카불의 한 교사는 “여학생들은 교문을 열기도 전에 신나서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아이들은 귀가하란 말을 듣고 나서도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탈레반은 지난해 8월 아프간을 재장악한 후 남학생과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등교는 단계적으로 허용했지만 7학년 이상 여중·고생의 등교는 대부분 막았다. 이를 두고 국제인권단체들은 탈레반이 여성의 교육과 취업을 대부분 금지했던 1990년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탈레반은 이달 하순부터 모든 여중·고생에게 교실을 개방하겠다고 꾸준히 말해왔다. 아지즈 아흐마드 라얀 교육부 대변인도 지난 17일 “여중·고생 등 모든 학생에게 학교를 개방하겠다”며 탈레반의 공식 입장을 재확인했다.
탈레반이 새 학기 첫날 갑자기 말을 바꾼 이유는 여학생들의 등교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강경파 세력을 달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나온다. 탈레반 고위인사 와히둘라 하시미에 따르면 시골 지역에 다수 거주하는 탈레반 보수세력들은 여학생들의 등교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도시에 있는 형제가 딸을 학교에 보내면 의절까지 무릅쓸 정도다. 가디언은 “이번 조치는 탈레반 중앙 지도부가 보수파 세력을 소외시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교육 정책을 뒤집기로 결정했음을 시사한 것”이라 분석했다. BBC도 탈레반의 입장 선회를 “시골과 부족에 기반을 둔 강경파 탈레반에 대한 양보”라고 해석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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