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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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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제와 고유가 사이 딜레마…미국에서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쟁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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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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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각료회의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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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러시아산 석유 및 천연가스의 수입 금지 여부가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 의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러시아산 석유 및 천연가스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측근들의 돈줄을 틀어막자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부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면서도 미국 내 에너지 가격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에 미온적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적 속내는 사뭇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사 머카우스키 공화당 상원의원과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은 3일(현지시간)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 법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석유, 석유제품류, 액화 천연가스,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머카우스키 의원은 “우리는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그들을 돕기 위해 달러를 러시아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상원 에너지 및 천연자원 위원회 소속인 머카우스키 상원의원은 이 위원회의 위원장인 맨친 상원의원과 함께 법안을 공동발의했다면서 상·하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어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법안에는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에드 마키 민주당 상원의원 등 거물급 의원들이 공동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 하원 1인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미국의 러시아산 석유 수출 금지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대찬성이다. 러시아에서 오는 기름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 중앙은행을 비롯한 대형 은행들을 제재하고 전략물자 및 주요 산업에 대한 수출 통제를 도입하는 전방위적인 제재를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대해선 제재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고 있다. 자칫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통제했다가 그렇지 않아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국제 유가 및 미국 내 기름값을 더욱 상승시킬 것이란 우려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으로서 전 세계 석유 수출량의 11%를 담당하고 있으며, 유럽이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가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제재를 가하면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인 석유 재벌들 그리고 러시아 정부가 큰 타격을 받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공급이 제약을 받으면서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은 더욱 올라갈 수 밖에 없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입을 피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 2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는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전날보다 배럴당 7% 급등한 110.6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2011년 5월 이후 11년 만의 최고가였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 내 주유소 휘발류 가격은 1갤런(3.79ℓ) 당 평균 3.73달러(약 4519원)으로 1년 전에 비해 무려 1달러나 올랐다.

AP통신은 미 에너지정보청 자료를 인용해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 및 석유 제품 가운데 7%가 러시아산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러시아로부터 2억4500만배럴의 원유 및 석유 제품을 수입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25% 늘어난 양이다.

이 때문에 백악관은 러시아 에너지 수출 제재에 대해선 아직까지 선을 긋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면서도 “우리는 에너지의 글로벌 공급을 줄이는 것에는 전략적 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제약해 러시아에 압력을 가하는 것에 비해 이로 인해 미국과 동맹국들이 입을 피해가 더 크다는 뜻이다.

각종 현안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에 대해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속내에도 관심이 쏠린다. AP통신은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정책 과제로 삼고 있는 민주당 진보 성향 의원들은 이 기회에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를 원하는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로 모자란 공급을 미국 내 에너지 생산 확대로 메우기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이 문제가 매우 까다로운 사안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고물가가 서민들의 가계에 압박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로 휘발유 가격이 더 올라가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큰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부족분을 미국 내 화석연료 추가 생산으로 메우려 할 경우 환경운동 진영과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일 국정연설에서 치솟는 유가와 관련해 미국이 전략비축유(SPR) 3000만배럴을 방출하는 등 국제에너지기구 30개 회원국이 6000만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제재로 인한 미국이 입을 경제적 피해와 관련해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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