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버블' 내 한 호텔의 방역요원들 |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올림픽 취재를 위해 귀향한 중국계 CNN 기자가 코로나19를 차단하기 위한 중국의 엄격한 방역 규칙 탓에 그리운 할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CNN 아시아지국에 소속된 셀리나 왕 특파원은 16일(현지시간) CNN 웹사이트에 '우리는 같은 올림픽 도시에 있지만 다른 세상에 떨어져 있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팬데믹 초기에 베이징 지국을 떠나 도쿄 지국으로 일터를 옮긴 그는 베이징 올림픽을 취재하라는 본사의 지시에 부푼 마음으로 2년여 만에 귀향했다.
하지만 '올림픽 버블'로 불리는 폐쇄식 방역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탓에 낯익은 베이징의 거리를 누빌 수도,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 준 할머니를 만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함께 할 순 없지만, 아쉬움 달래보는 기념사진 |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호텔에서 폐쇄 구역 밖에 있는 다리에 모인 베이징 시민 가운데 할머니를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친척을 통해 할머니를 이 다리에 나오도록 해 2년여 만에 상봉이 성사된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나온 할머니를 향해 왕 특파원은 펄쩍펄쩍 뛰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새해 인사를 외쳤고, 손녀를 알아본 할머니는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왕 특파원은 기고문에서 "우리의 만남에서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격리 문제가 상징적으로 드러났다"며 먼발치의 할머니가 잘 들을 수 있도록 휴대전화를 꺼내 영상통화로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내 할머니가 사는 도시에 돌아왔고, 춘제(중국의 설)에 할머니가 문자 그대로 몇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서로 안을 수 없었다"며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터졌다"고 털어놨다.
베이징 올림픽조직위원회는 선수단과 취재진, 자원봉사자, 스태프 등 모든 올림픽 관계자를 '올림픽 버블'로 불리는 폐쇄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구역은 큰 철조망과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올림픽 관계자들은 이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어 올림픽 기간 갇혀 지내야 한다.
베이징올림픽 미디어센터의 한 중국인 진행 요원 |
이에 더해 1월초 이곳에 입소한 자원봉사자와 스태프 등 올림픽 관계자는 3월 중순 패럴림픽까지 모두 마무리되면 중국 정부가 지정한 시설에서 21일 동안 자가 격리해야 한다. 꼬박 2개월 넘게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자신을 소개한 왕 특파원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지고 국제사회에서 힘도 세졌지만 인권 문제 등으로 서방의 가치와 반목하면서 감시와 통제도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중국 시민 사이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인에 대한 적대감이 더 커진 탓에 그리 민감하지 않은 주제라 할지라도 서방 언론의 취재에 응하는 것을 꺼리게 돼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고충도 토로했다.
왕 기자는 "이런 분위기 탓에 세계는 14억 중국인의 풍요롭고 다층적인 삶을 알게 되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ykhyun14@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