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금메달 타령'은 긍정적…인기 종목 '몰빵 중계'는 여전
[올림픽] 차민규, 안정적으로 호흡 조절하며 |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상을 전달하는 지상파 방송 3사 일부 캐스터와 해설자들이 지나치게 감탄사를 연발하고 '애국 중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 12일 차민규(의정부시청)가 출전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 중계가 대표적인 예다.
차민규가 이날 초반 100m를 9초 64에 끊고 선두로 치고 나선 순간, 일부 해설자들은 고함을 지르느라 제대로 중계하지 못했다.
이상화 KBS 해설위원은 차민규의 경기 중 "먼저, 먼저, 오오! 잘 보여! 차분하게, 차분하게, 차분하게 좋아!"라며 "올려야지!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오오"라고 외쳤다.
이 위원은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 "뭐야, 뭐야, 뭐야?"라고 소리치다가 차민규의 은메달이 확정되자 "이야! 은메달 잘했다. 잘했다. 와 이럴 수가 있나"라며 손뼉을 치기도 했다.
이어 차민규가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돌자 "야, 야, 여기! 야, 여기 봐"라고 외쳤다.
옆자리의 캐스터가 "방송에서 그러시면 안 된다"고 제지했지만, 이 위원은 멈추지 않았다.
차민규가 시상대에 올랐을 때도 "와 이럴 수가 있나. 야, 야, 여기! 민규 짱"이라고 했다.
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인 이 위원은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에서 금메달, 2018년 평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 최고의 여자 단거리 스프린터로 이름을 날렸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해설자로 찾은 이상화는 후배 차민규의 활약에 벅찬 나머지 잠시 본분을 잊은 것에 대해 "너무 흥분했다"며 사과했지만, 시청자의 혹평이 쏟아졌다.
KBS 시청자권익센터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는 14일까지 '베이징올림픽 중계에서 이상화 위원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상화 해설 자격 없다' '이상화 해설 자격 없으니 중지시켜 주세요' 등의 청원이 올라왔다.
"차민규 경기 때 이성 잃고 반말에 '잘했다, 잘했다'만 수십번 소리 지르는 거 보고 채널 돌렸다"는 지적부터 "유튜브 방송인지 의심스러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달리는 황대헌 |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개회식부터 한복을 입은 여인이 등장해 불쾌감을 자아내더니 쇼트트랙을 중심으로 촉발된 중국의 편파 판정과 텃세 논란으로 '눈 뜨고 코 베이징'이라는 웃지 못할 패러디까지 등장했다.
지난 9일 황대헌(강원도청)이 출전한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전을 앞두고 한 해설자는 "결승전 10명에 중국 선수가 보이지 않아 다행이네요"라고 말했다.
이 해설자의 말은 어이없는 실격 사태에 분노한 우리 국민들의 속마음을 순간적으로 드러낸 것이지만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이처럼 올림픽 해설자들은 국민 정서를 대변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혐오의 감정에 굴복해서도 안 된다.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지나치게 '국뽕'(지나친 애국주의) 해설로 일관해서도 안 되기에 적정선을 지키기 위해 매 경기 어려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올림픽 해설이 칭찬받은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난 것만은 긍정적이다.
2020 도쿄 하계올림픽 당시 유도 남자 73㎏급 동메달 결정전을 중계하던 한 해설자는 안창림의 동메달 획득을 두고 "우리가 원했던 색깔은 아닙니다만"이라는 표현으로 뭇매를 맞았다.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이 남자 마라톤에서 허벅지 통증으로 기권하자 한 해설위원은 한숨을 내쉬며 "완전히 찬물을 끼얹었다.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선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가 많이 정착된 것은 다행스럽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성숙해진 스포츠 관람 문화와 해설자의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만 지상파의 올림픽 '몰빵 중계'는 이번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인기 종목인 쇼트트랙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지상파 3사가 모두 쇼트트랙만 중계해 다른 종목을 전혀 볼 수 없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상파 3사의 이러한 관행이 아이스하키 등의 동계올림픽 종목이 한국에선 비인기 종목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changy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