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당정, 서한에 담긴 "후쿠시마 많은 아이 갑상샘암 고통" 꼬투리 잡아 맹비난
고이즈미 전 총리 등은 지구온난화 대책에 도움이 되는 투자처로 원전을 인정하려는 EU 집행위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내용의 서한을 지난달 27일 자로 발송했다.
이 서한에는 고이즈미 외에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간 나오토(菅直人),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등 원전 반대 운동에 동참해 온 다른 전직 총리 4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원전 추진은 미래를 위협하는 '망국의 정책'이라며 원전을 그린 에너지로 분류해선 안 된다고 했다.
특히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이 안전하지도, 클린(청정)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됐다"고 강조하고 지속가능한 세계 실현을 위해선 탈(脫)탄소와 탈원전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의 원전 반대 활동가로 변신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
원전 유지 정책을 고수하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주도의 현 일본 정부와 일본 내 원전 지지파는 EU 차원에서 원전을 그린 에너지원으로 인정할 경우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후 가동이 중단된 다른 원전을 재가동하는 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총리들이 서한을 보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원전을 규정하려는 EU 움직임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어서 일본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문제의 서한에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에서 "많은 아이가 갑상샘 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이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꼬투리를 잡아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 서한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둘러싼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다며 주의를 요구하는 내용의 문서를 5명의 전직 총리에게 야마구치 쓰요시(山口壯) 환경상이 보냈다고 밝혔다.
야마구치 환경상은 이 문서 내용을 주일 EU 대사에게도 설명하고 전직 총리들이 주장한 내용을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
후쿠시마현은 사고 당시 18세 이하였던 약 38만 명을 대상으로 방사선 피폭으로 생길 수 있는 갑상샘 암 추적 검사를 시행했고, 작년 6월까지 총 266명이 갑상샘 암 의심 진단을 받았다.
이 가운데 5명은 2012년부터 2018년 사이에 실제로 암이 발견됐다.
원전에 반대하는 전직 총리 5명이 EU 집행위에 보낸 서한에 쓴 "많은 아이가 갑상샘 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은 이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현 전문가 회의는 방사선 피폭량 추계치가 낮은 점 등을 이유로 갑상샘 암 발병이 원전 사고에 따른 피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중간보고서를 내놓은 상태다.
후쿠시마현 차원의 검사에서 갑상샘 암이 발견돼 치료를 받아온 5명은 다른 1명과 함께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을 상대로 총 6억1천600만엔(약 65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지난달 27일 도쿄지법에 제기했다.
이에 따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갑상샘 암 발병의 연관성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가능성이 커졌다.
집단 소송 제기하는 일 후쿠시마 원전 피해자들 |
이런 마당에 기시다 정부와 자민당은 고이즈미 전 총리 등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처럼 기술한 것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야마구치 환경상은 전직 총리 5명에게 보낸 문서에서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후쿠시마 주민들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과 편견이 조장되는 것이 우려된다. 적절하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무조사회장도 2일 기자회견에서 "잘못된 정보"라며 전직 총리 5명의 서한 내용을 비판하고 항의의 뜻을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3일 기자회견을 통해 후쿠시마현 검사에서 발견된 갑상샘 암이 현 시점에선 방사선 영향으로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 평가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근거로 '많은 아이가 갑상샘 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기술은 "후쿠시마현 어린이들에게 방사선에 의한 건강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이유 없는 차별과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어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전직 총리들을 거듭 비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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