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봉쇄기간 중 방역수칙을 어기고 총리실 직원들이 술파티를 벌인 ‘파티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또다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철군 당시 아프간인 대신 유기견을 구조하는 데 자원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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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등 외신은 26일(현지시간) 영국 하원 외무위원회에서 존슨 총리가 아프간 구출 작전 당시 유기견 등 약 150마리의 동물 구출을 승인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e메일들이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e메일에는 “전직 영국 해병대원이 운영하고 있는 자선단체 ‘나우자드’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총리는 해당 단체의 직원들과 동물들을 대피시킬 것을 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메일들을 증거로 제출한 이는 구출 작전 관련 업무를 맡았던 전직 공무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프간인들을 구출하는 대신 동물 대피에 자원을 할당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살해당할 위험에 처하게 됐다”면서 나우자드의 유기견과 유기묘들을 빼내기로 한 결정이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지난해 8월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하면서 전세기를 띄워 자국민과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섰던 정부는 유기동물들을 데려오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국방부는 처음엔 사람이 우선이라며 공군 항공기에 동물을 태울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영국 해병 출신 폴 파딩은 본인이 운영하는 동물보호 자선단체인 나우자드의 유기견과 유기묘를 데려가겠다고 요구하면서 여론을 형성하는 식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당시 파딩 때문에 구출 작전에 차질이 있다고까지 말했으나 갑자기 방침을 바꿔 전세기를 이용해 동물들을 데려가도 좋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존슨 총리의 부인인 캐리 존슨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 주장한다. 파딩의 동료들은 캐리 존슨과 존슨 총리의 측근인 트루디 해리슨 등 주요 인물들을 상대로 로비에 공을 들이며 도움을 요청해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미 파티게이트로 궁지에 내몰린 존슨 총리의 신뢰도는 더 크게 훼손될 전망이다. 존슨 총리는 그동안 본인이 유기견 구출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인터뷰에서 아프간 구출 작전에서 사람보다 동물을 우선했냐는 질문을 받고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선을 그었다. 당시 총리 대변인도 “총리나 부인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총리 대변인은 이날도 총리가 직원들에게 특정 행동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영국을 위해 일했지만 카불에서 탈출할 수 없었던 아프간인들은 해당 의혹이 제기된 후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 년 동안 영국 구호 사업들의 선임 고문으로 일해온 아시프는 “그들은 아프간에서 동물들을 구출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 남아 동물처럼 살고 있는 인간들이 됐다”면서 “매우 고통스럽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영국 대사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압둘라도 “영국 정부를 위해 수년간 복무해온 경비원들보다 개들에게 우선권을 주었다”며 분노했다. 여전히 카불에서 지내고 있는 그는 “영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우릴 구출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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