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보라 기자]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촬영으로 인해 출연했던 말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여러 면에서 충격적이다. 최근 SNS를 통해 공개된 제작영상을 보면 말과 말에 오른 스턴트배우 등 모두의 안전이 걱정될 정도로 낙마신(scene)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게 우선 매우 놀랍다.
지금껏 여러 드라마 및 영화에서 낙마 장면이 나왔었는데 이런 식으로 혹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해왔을 거란 생각을 하면 더욱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 사고가 외부에 드러나서 이제 바뀌려고 하는 것이지, 지금껏 동물의 생명권을 중시하지 않고 소품쯤으로 여기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달 1일 전파를 탄 ‘태종 이방원’ 7회에서는 사냥에 나선 이성계(김영철 분)가 낙마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은 이야기가 그려졌다. 다시보기에서는 이성계가 낙마하는 모습이 편집됐지만, 촬영 당시에는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고 스태프가 멀리서 줄을 당기는 방식으로 낙마를 극적으로 연출했다. 해당 촬영에선 스턴트배우와 말이 그대로 고꾸라졌고, 촬영 7일여 후 말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제작진에 대한 시청자들의 동물 학대 논란이 거세졌다.
또한 주연배우 주상욱(이방원 역)의 SNS 계정에는 물론이고 배우 차예련의 SNS에도 악성 댓글이 며칠 동안 이어지고 있다. 물론 아내까지 이번 일에 연루시키는 건 도리에 맞는 취지는 아니다.
이에 방송사인 KBS 측과 드라마 제작진은 사고의 전적인 책임자로서 잘못을 인정하고 시청자들에게 사죄했다. KBS 측은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태종 이방원’ 촬영중 벌어진 사고에 대해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사과 드린다. 낙마 장면은 매우 어려운 촬영이다. 말의 안전은 기본이고 말에 탄 배우의 안전과 이를 촬영하는 스태프의 안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제작진은 며칠 전부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준비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촬영 당시 배우가 말에서 멀리 떨어지고 말의 상체가 땅에 크게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최근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말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촬영 후 1주일쯤 뒤에 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고를 방지하지 못하고 불행한 일이 벌어진 점에 대해 시청자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나흘 후인 24일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제작진은 다시 한 번 잘못을 반성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태종 이방원’ 측은 “KBS는 드라마 촬영에 투입된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시청자 여러분과 국민께 다시 한 번 깊이 사과 드린다”며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제작 관련 규정을 조속히 마련하겠다. 자체적으로 이번 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외부기관의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작진은 현재 드라마 촬영을 잠시 중단했으며 결방을 결정했다. 동물 생명을 존중하고, 스턴트 배우 및 스태프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건설적인 촬영방법을 도모하기 위해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KBS와 제작진이 2차례 사과하는 동안 주인공 주상욱과 김영철 등 배우들은 마치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멀리서 팔짱만 끼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주상욱은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 데다, 촬영도 PD와 스태프가 진행했으니 본인은 입장을 밝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의 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배우는 조단역이나 특별출연하는 배우들과 달리 주인공이라는 명목으로 주체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고 판도를 바꿀 수 있다. ‘태종 이방원’이 방송되기 2달 전부터 주상욱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드라마를 홍보하고, 촬영 중 찍은 사진을 여러 차례 올린 것을 보면 이 작품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오롯이 올릴 ‘내 것’으로 아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낙마사고가 알려진 후에는 유감 표명 한마디가 없다.
일각에서는 주상욱이 사고가 나도록 진두지휘한 게 아니기 때문에 입장 표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 본인 역시 ‘내가 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입장 표명을 하라는 네티즌 및 시청자들의 반응을 납득하기 어려워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제작이 전면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연 배우가 뒤에 숨어 있고, 모든 책임을 제작진과 방송사에게 미루는 듯한 모습은 조금 아쉽게 비춰진다.
주연배우는 ‘작품의 얼굴’이라는 말에 근거해 그들의 역할이 법적으로 책임 추궁의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도의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도덕적인 책임은 제작진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 전체 조직 내 구성원으로 확산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배우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마인드는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을 하는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주상욱이 이번 사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주연배우라면 일단 전면에 나서서 드라마를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촬영 및 방송이 재개될 시간을 기다려 달라고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맞는 순서라고 생각한다. ‘태종 이방원’의 주인공으로서 거취 표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 purplish@osen.co.kr
[사진]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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