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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헌팅캡 모자로 마스터스에 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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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기자실에 걸려 있는 댄 젠킨스의 모자.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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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한국시간) 아침 미국 골프 뉴스사이트의 톱 기사는 일제히 팀 로사포르테라는 골프 언론인의 부고 기사였다. 그가 일했던 곳은 물론, 다른 골프 매체에서도 그의 죽음을 가장 큰 기사로 애도했다. 잭 니클라우스 등 선수들도 트위터 등으로 그를 추모했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얼굴이 익고, 은퇴한 지 2년 만인 66세에 세상을 떠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해도 한 기자의 죽음을 각 미디어에서 톱기사로 쓴 것은 이례적이다.

‘로지’라 불렸던 그는 소탈한 태도와 호기심으로 슈퍼스타부터 스코어 기록원까지 취재원이 많았다. 워낙 일을 많이 해 핸드폰 두 대를 가지고 다녔다.

미국 CBS 방송의 유명한 스포츠 캐스터인 짐 낸츠는 “그는 한 핸드폰으론 아널드 파머, 다른 폰으론 타이거 우즈와 동시에 통화를 하는 모습도 봤다”고 전했다.

로지는 자신의 재능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보다 열심히 일했다. 사건 뒤에 흐르는 진실과, 남들이 못 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동료들은 전한다.

인기 없는 언론인의 죽음이 톱기사에 오른 건, 상대적으로 가짜 뉴스의 시대라서라고 생각한다. 편향된 사람들이 많으니 공명정대하려 노력했던 그가 상대적으로 더 존경받은 것은 아닐까 한다.

PGA 투어 혼다 클래식 조직위는 대회 기자실 이름을 그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나는 디 오픈이 가장 위대한 골프 대회라고 생각하지만, 마스터스에 가는 걸 더 좋아한다. 미국의 뛰어난 스포츠 언론인들이 대부분 오기 때문이다.

똑같은 장면을 그들이 어떻게 달리 해석하는지 보는 건 선수들의 샷 경쟁을 보는 것만큼 흥미로웠다. 그 중 한 명이 댄젠킨스(1928~2019)였다.

사실에 기반을 두면서도, 상상력과 신랄한 풍자로 미국 스포츠 저널리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 자리를 옮기자 잡지 부수가 2~3% 줄었다고 전해질 정도다.

나는 그가 골프라는 소재를 통해 날카로운 관조와 해학으로 인생의 의미를 읽어냈고, 저널리즘을 문학으로 승화했다고 생각한다.

대학 대강의실 같은 마스터스 구 기자실에서 중앙일보 자리 몇 칸 앞이 그의 자리였다. 항상 헌팅 캡을 쓰고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젠킨스는 고령일 때도 기사를 고민하며 담배를 피웠다. 그에게 말을 걸면 자신의 손 떨림에 대해, 끊지 못하는 담배에 대해, 무뎌지는 필력 등 자신에 대해서 시니컬한 농담을 하곤 했다. 그래도 그의 촌스러운 헌팅 캡이 시가를 문 체 게바라의 베레모처럼 멋져 보였다.

마스터스를 68번 취재한 그는 2019년 91세로 별세했다. 마스터스는 기자실의 젠킨스가 앉던 자리에 그의 헌팅 캡 모자를 걸어 놓는다.

그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내가 아는 젠킨스라면 명예의 전당에 전시된 얼굴 동판보다 기자실에 남은 모자를 더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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