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패스, 미접종자 기본권 침해 논란 |
(서울=연합뉴스) 정부의 방역 패스 정책에 제동을 거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4일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에 대한 방역 패스(백신접종 증명·음성 확인제) 적용을 막아달라는 학부모 단체들의 집행 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3일 보건복지부가 내린 특별방역 대책 후속 조치 중 교육 관련 시설 3종에 대한 방역 패스 의무 적용은 본안 판결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다. 이번 결정으로 방역 패스를 통해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간접 강제하려는 정부의 계획은 일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단계적 일상 회복 조치를 시작하면서 유흥시설, 노래연습장, PC방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방역 패스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달 그 대상을 학원, 독서실, 영화관 등으로 확대했고 오는 10일부터는 마트, 백화점 등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의료인 등 1천여 명이 교육 시설뿐 아니라 방역 패스 조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제기한 소송도 주목된다. 집행 정지 신청의 심문은 오는 7일 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분주히 대응하느라 잠시 놓치고 있던 방역 조치 시행 과정의 기본권 침해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재판부는 학원, 독서실 등에 대한 방역 패스가 교육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접종자에게 이런 불리한 처우를 하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빈번한 돌파 감염, 모두 매우 낮은 수준인 접종자와 미접종자의 감염 비율 등을 고려할 때 미접종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큰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백신 접종을 독려할 수는 있지만,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 결정권 역시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오미크론 변이 등 코로나 확산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방역 당국으로서는 당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부는 방역 패스가 백신 접종을 유도하고 바이러스 전파를 억제할 뿐 아니라 미접종자의 건강과 안전에도 도움이 되는데 재판부가 이런 점을 간과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미접종자의 감염, 중증화, 사망 비율이 접종자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통계로도 뚜렷이 확인된다. 법원의 제동에도 방역 패스의 효용은 여전한 만큼 정부의 현명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개인의 기본권과 자유, 국가의 역할과 책임 등 민주 사회의 여러 핵심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는 미국·유럽과 비교해 방역 조치에 대한 수용도가 높고, 백신 접종률도 양호한 편이다. 국민들이 사상 초유의 공중보건 위기를 맞아 정부 시책을 잘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관련 정책을 결정할 때 방역에만 온통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지속하기도 어렵다. 팬데믹 상황이라 방역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들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자영업자들이 거리두기 강화에 반대해 집단행동을 재개하는 등 방역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가 방역 체계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즉시 항고할 방침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그치지 말고 방역과 기본권 보호라는 두 가지 목표를 잘 조화시킬 수 있는 근본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 교육 관련 시설이나 마트처럼 필수적인 활동 영역이면서도 감염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대해서는 방역 조치를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론을 수렴하고 여러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최적의 균형점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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