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안해도 끌고 가 구금
심문하며 성학대·고문·강간
잇딴 폭로에 정부 "가짜뉴스"
저항 심한 소수민족 거주지에 방화
빈집도 계속 태워 숨을 장소 없애고
민주인사 인질로 잡아 산채로 화형
국제사회 방관 속 수치 종신형급 혐의
군부 하루만에 판결 뒤집고 무력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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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현의 기자] "어느 날 반(反)군부 시위에 가져갈 현수막을 만드는 도중 체포됐습니다. 밴 차량 뒷좌석에 실려 한참을 이동해 내린 곳은 심문소였습니다."
미얀마의 한 여성 민주 운동가의 6개월간의 수감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특히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심문소에서의 첫 10일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갖은 학대와 고문은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겼다.
그는 눈이 가려진 채로 심문소에 들어갔다. 고문관들은 그를 앉히자마자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나무 작대기로 마구 때렸다. 성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도 집요하게 했다. 그에게 "이곳에 들어오는 여성은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강간 후 살해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눈이 가려진 채 성폭행을 당한 그는 이후 안대를 벗을 수 있었다. 고문은 그 이후에도 지속됐다. 고문관들은 그에게 주변인들의 연락처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가 침묵을 지키자 고문관들은 그의 입을 강제로 벌리더니 장전된 권총을 밀어 넣었다.
시위 선두에 섰던 여성들, 고문에 만신창이
올해 초 군부 쿠데타에 항의했다가 체포·구금됐던 여성 5명이 최근 BBC 등을 통해 이 같은 학대 사실을 알렸다. 가부장제가 강한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젊은 여성들은 시위대의 선봉에 서왔다. 군부 쿠데타 항의 시위의 첫 희생자도 20세 여성이었다. 이들은 쿠데타 이후 체포돼 성적 학대, 고문, 강간 위협 등에 끝없이 시달려왔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한 연구원은 "군부의 성 학대는 어느 곳에서나 이뤄질 수 있다"며 "임시 수용소, 군용 막사, 버려진 공공건물 등에서도 일어난다"고 밝혔다.
다수의 여성 피해자를 대변하는 미얀마의 한 변호사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잡혀간 여성이 있다"며 "그는 자신이 시위에 불참했다고 끊임없이 말했지만 고문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여성은 고문관들이 철봉으로 그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때려 의식을 잃기도 했다. 이후 다른 심문소로 보내졌는데 한 고문관은 그에게 "나랑 성관계를 맺으면 풀어주겠다"고 희롱했다. 여성 민주 운동가들의 이 같은 폭로를 시작으로 관련 증언이 잇따르고 있지만 미얀마 정부는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민주화 운동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1329명이다. 여성은 이 중 100명에 가깝고 최소 8명이 유치장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4명은 심문소에서 고문을 당하던 도중 사망했다. 구금된 사람은 누적 1만889명으로, 이 중 2000명 이상이 여성이다.
지난 10월 29일 미얀마의 친주(州) 탄드란에서 주택들이 불에 타고 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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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대 꾸리는 소수민족엔 방화
미얀마에서 지난 2월1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317일째다. 가장 직격탄을 입은 사람들은 여성, 소수민족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생명의 위협을 받고 가족과 거처를 잃으면서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군부에 맞서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미얀마의 대표적인 소수민족 거주지인 친주(州) 탄드란은 군부의 무차별 폭격과 화재로 지역 4분의 1 이상이 화재로 소실됐다. 친주는 군부에 대한 저항이 강한 지역으로, 군부는 반군부 세력들이 체포를 피해 이 지역의 빈집에 숨는 것을 막기 위해 반복적인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
반군부 세력인 민병대 친주 시민방위군(CDF)은 지난 8일 현지 언론 미얀마나우에 "쿠데타군이 지난 9월 처음 공격을 한 이후 12차례에 걸쳐 불을 냈다"고 전했다. 탄드란의 전체 거주민 1만여명은 9월 쿠데타군의 첫 공격 후 일찌감치 피난을 떠났다. 하지만 군부는 몇 달째 비워진 상태인 주택들을 불태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CDF에 따르면 지금까지 마을 548곳 내 주택 2000개와 교회 4곳, 고등학교가 전소됐다. 쿠데타군은 화재를 진압하려는 목사를 죽인 뒤 그의 한 손가락을 잘라내기도 했다.
쿠데타군과 또 다른 반군부 세력 간 전투가 벌어진 중부 사가잉 지역에서는 지난 7일 불에 탄 주민들의 시신 11구가 발견됐다. 현지 언론과 목격자 등에 따르면 쿠데타군은 인질로 잡은 이들을 고문한 뒤 산 채로 불태웠다. 한 목격자는 "쿠데타군들은 자신들이 발견하는 모든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며 "군인들은 그들이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심하게 구타한 뒤, 손을 뒤로 묶어 불태웠다"고 전했다. 사망한 11명 가운데 5명은 18세 이하 청소년이었으며 가장 어린 희생자는 14세였다. 이들은 시민군 활동을 돕던 민주 인사들로 쿠데타 이전에는 마을의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 방관에 만행 지속
미얀마 군부는 국내외 비난에도 침묵을 지킨 채 만행을 이어가고 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UN) 대변인이 최근 "미얀마 군 당국의 폭력을 강력히 규탄한다. 관련 행위에 가담한 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군부는 오히려 반군부 세력의 거점 지역에서 극악무도한 만행을 이어가고 있다.
미얀마의 이 같은 극한 상황에도 국제사회가 실질적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미얀마의 봄’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얀마의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은 지난 6일 선동과 코로나19 방역 조치 위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선고는 군부 쿠데타 이후 수치 고문에게 내려진 첫 법원 판결인 만큼 향후 수치 고문 처리 방향에 대한 군정의 의도를 파악할 바로미터였다.
수치 고문은 두 혐의 외에도 뇌물수수, 국가기밀 누설 등 10여개의 혐의를 더 받고 있다. 이 가운데 공무상 비밀보호법과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은 각각 15년형 이상 선고가 가능한 중형으로, 모든 혐의에 최고 형량이 적용될 경우 징역 110년 이상의 형이 선고될 수 있다. 수치 고문이 올해 76세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형을 내린 것이다. 수치 고문의 오랜 정치적 동지인 원 민 전 대통령도 같은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군부는 눈엣가시로 여기던 이들에게 내려지는 판결에 공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수치 고문에게 형량이 선고된 후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국영 TV를 통해 "사면 차원에서 두 사람에게 선고한 형량을 2년으로 감형한다"고 돌연 발표했다. 미얀마 법원이 당일 오전 4년형을 선고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공개적으로 법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는 재판의 중심에 사법부가 아닌 군부가 있다는 것을 직접 공인하면서 미얀마가 1년 가까이 놓인 처참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조현의 기자 hone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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