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브리핑] n번방 방지법, ‘사전검열’이 아니라 ‘범죄영상 필터링’이다
대형 부가통신사업자의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의무화하는 ‘n번방 방지법’이 지난 10일 시행됐다. 디지털 성폭력 근절에 플랫폼이 나서야 한다는 여성들의 요구가 모여 20대 국회 종료를 하루 앞두고 겨우 도입된 법안이다.
하지만 이 법은 시행 하루 만에 ‘재개정’ 여론에 직면했다. 일반 카카오톡 채팅 등 개인 간의 사적 대화는 적용 대상이 아님에도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한 ‘검열 논란’이 정치권과 언론과 통해 확산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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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법, 무엇이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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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대상은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연평균 매출액이 10억원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 중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커뮤니티, 대화방, 인터넷 개인방송, 검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87개 업체다. 웹하드 사업자 대상으로는 비슷한 규제가 있었지만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 공론화되면서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네이버가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불법촬영물 등 기술적 식별 조치시스템 ‘DNA 필터링. 네이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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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이들이 취해야 할 기술적·관리적 조치는 지난달 30일 발표된 방송통신위원회 고시에 명문화돼있다.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이용자가 올리려는 동영상이나 GIF 이미지가 정부 불법촬영물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범죄 영상에 해당하는지를 사전에 ‘식별’하고 이에 해당하면 ‘게재를 제한’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피해촬영물이 한번 온라인 공간에 올라가면 영구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다. 기존에도 네이버, 트위터 등 대형 플랫폼은 자체 운영지침과 인공지능(AI) 기반 필터링 시스템을 통해 폭행이나 성폭행을 묘사하는 콘텐츠 유통을 제한하고 있었다. 하지만 삭제되지 못한 불법촬영물을 피해자가 발견할 경우, 신고부터 실제 삭제까지에 시간이 걸렸다. 이는 영상의 재확산과 2,3차 피해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플랫폼은 불법촬영물 의심 영상을 신고하고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할 책임이 있다. 제목 필터링이나 문자열 비교를 통해 이용자가 검색하려는 정보가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만약 삭제나 접속 차단 등의 조치를 의도적으로 취하지 않는 경우, 매출액의 3% 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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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첫날부터 불거진 ‘위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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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법’ 시행 첫날인 지난 10일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고시가 “헌법 제18조에 반하는 검열”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헌법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이다.
에펨코리아의 한 사용자는 “오픈채팅이 검열된다는 사실은 카카오톡이 이미 모든 사진, 움짤, 영상을 검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고, 마음만 먹으면 개인 카톡을 검열할 수 있다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엠엘비파크에도 “n번방은 텔레그램에서 일어났는데 왜 카톡에 법을 적용하나”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n번방 방지법이 헌법 18조가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재개정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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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은 이러한 여론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통신 사업자들에게 이용자를 감시하라고 부추기는 조항이고 국제 인권 기준에 어긋나는 법”이라며 “전 국민의 모든 영상물을 검열하는 ‘전 국민 감시법’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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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 “검열이 아닌 필터링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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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법’을 ‘전 국민 감시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적절할까.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리는 영상을 헌법상 통신 비밀을 보장받는 ‘사적 대화’로 보기는 어렵다. 방통위는 지난해 5월에도 설명자료를 내고 “불법촬영물 등에 대한 사업자의 유통 방지 의무는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를 대상으로 부과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이메일, 개인 메모장, 비공개 카페, 블로그 등의 사적 대화는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필터링 조치와 ‘사전검열’은 다소 차이가 있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필터링 기능 자체를 검열로 규정하기엔 이미 다수의 플랫폼 서비스가 저작권 침해, 혐오표현 확산을 막기 위해 유사한 기능을 사용 중”이라며 “이용자들의 심리적 거부감은 이해하지만, 정치권에서 지나치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필터링 기능은 딥러닝을 이용, 영상물의 ‘특징정보’를 추출한 뒤 정부가 보유한 불법촬영물 데이터베이스(DB)와 대조해 불법촬영물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n번방 방지법’이 사전검열법?···고양이 영상 올려보니, 1초 후 채팅방에 공유
정부나 일선 기업이 불법촬영물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것이란 우려도 사실과 다르다. 디지털 성범죄 유관부서인 경찰청(수사), 여성가족부(피해자 지원), 방송통신위원회(불법촬영물 삭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불법촬영물 심의)는 2019년부터 각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하던 불법 촬영물 정보를 통합해 하나의 ‘데이터베이스(DB)’로 관리하고 있다. 즉 필터링 되는 영상은 경찰이 수사를 하거나, 피해자가 신고를 했거나, 피해 지원단체가 모니터링 과정에서 확인한 영상 중에서 방심위가 불법촬영물로 심의·의결한 것들이다. DB는 24시간마다 업데이트된다.
13일 기자가 직접 카카오톡 오픈채팅 그룹채팅방에 고양이 영상을 업로드했다. 필터링 기능 작동 과정에서 안내문이 게시됐지만, 약 1초 만에 정상적으로 대화방에 공유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카오톡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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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첫날 남초 커뮤니티에는 ‘고양이 짤도 검열을 당했다’는 식의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실제로 13일 기자가 한 오픈채팅방에 ‘고양이 움짤’을 업로드해봤다. 영상을 채팅방에 올리자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중입니다’라는 안내문이 게시됐다. 이후 약 1초 만에 고양이 동영상은 정상적으로 채팅방에 공유됐다.
고양이 움짤 뿐 아니라 ‘일반에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 중 모든 영상물에 대조작업이 진행되지만, 불법촬영물이 아니라면 용량에 따라 수초에서 수십초 내로 전송이 완료된다. SNS에 검열 사례로 등장하는 채팅방 사진은 DB 대조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을 캡쳐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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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이트는 피해 청정 지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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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의 발단이 됐던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해외 사업자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을 들어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 같은 1:1 메신저가 제외한 이유는 현재 남초 커뮤니티에서 우려하고 있는 ‘사생활 침해’ 가능성 때문이었다. 사적 대화방에서의 성착취물 유통은 경찰 잠입 수사를 통해 별도 모니터링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언급된다.
국내 사이트가 불법촬영물 피해의 ‘청정 지역’이라 볼 수도 없다. 감이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는 “모니터링을 하다보면 국내 오픈채팅방에서도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는 경우가 많다. 불법촬영을 요구·방조하거나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는 비공개 단톡방을 홍보하는 경로로 활용되는 등 실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해 3월25일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이석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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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단체들은 ‘사후 대응’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번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감이 활동가는 “구글 같은 해외 사이트는 물론 국내 사이트들도 피해자의 삭제 요청 이후 이것이 실제로 삭제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삭제 요청을 수용할지 말지 여부도 사업자 판단에 달려있었다”며 “이미 자신의 영상이 유포되고 있음을 확인한 피해자에게 삭제 지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n번방 방지법’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통신(IT)·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플랫폼에 일반적인 감시 책임을 부과하고 처벌 규정을 두는 것이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관련 업계는 기술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처벌이 사업자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새로 제작된 성착취물 등을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이에 대해 감이 활동가는 “법 시행 과정에서 권리 침해가 발생한다면 보완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며 “시행 초기 혼란을 이유로 정책을 아예 도입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더 많은 피해가 양산되는 것을 지켜보자는 것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데이트폭력의 피해자 대부분을 여성으로 전제하는 것은 ‘차별’일까.
젠더폭력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는 상황에선 이 주장을 정확하게 반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최소' 열흘에 한 명 꼴로 여성이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한다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https://t.co/ABSfXUcWvv
— 플랫 (@flatflat38) November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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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이유진 기자 yjlee@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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