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 직장폐쇄가 내려진 결과다. 선수들의 초상권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갖고 있는 상황에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법정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 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도 당분간은 판매 불가다.
메이저리그에 겨울이 찾아왔다. 모두가 '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메이저리그가 노사 분규로 업무가 중단된 것은 지난 1994년부터 95년까지 진행된 선수단 파업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보자.
메이저리그가 멈춰섰다. 사진=ⓒAFPBBNews = News1 |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메이저리그는 CBA(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 공동단체교섭)를 통해 시즌을 운영하고 있다. 이 CBA는 리그 운영의 모든 규정을 명문화하고 있다. 기존 CBA는 미국 동부시간 기준 12월 1일 오후 11시 59분에 만료됐다. 시즌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전까지 새로운 협약을 맺어야했는데 메이저리그 노사가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양 측은 지난 주말부터 텍사스주 어빙에 있는 한 호텔에 모여 막판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새로운 CBA 합의에 실패하자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은 만장일치로 2일 오전 0시 1분부터 직장폐쇄를 결의했다.
아직 시즌도 아닌데 왜?
'직장폐쇄'란 노사쟁의가 일어났을 때 사용자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직장을 폐쇄하는 일을 말한다. 직원들의 업무 수행을 막으며 임금 지급도 피하는 수단이 된다. 법으로 규정된 사용자측의 권리다.
이번 조치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소속팀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류현진이 토론토 블루제이스 구단 시설을 이용하기를 원해도 그럴 수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지금이 오프시즌 기간이라는 것이다. 구단들이 선수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기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무국은 직장폐쇄를 택했다. 이번 조치로 당장 2022시즌이 날아간 것도 아니다. 괜히 '노사 평화가 깨졌다'는 안좋은 이미지만 남게됐다.
이에 대해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2022시즌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조치"라며 직장폐쇄가 "선수노조를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3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합의없이 시즌을 치르게되면 언제든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며 1994년 8월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포스트시즌이 취소됐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했다.
토니 클락 선수노조 사무총장은 같은 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직장폐쇄를 "불필요한 조치"라고 비난했다. 직장폐쇄 조치가 선수들을 협상장으로 불러내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서는 "선수들은 이를 불필요하고 도발적인 조치로 여기고 있다"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직장폐쇄 조치 이후 메이저리그는 법적 조치를 의식해 공식 홈페이지 선수 소개란에 사진을 모두 없앴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선수 소개란. 사진= 블루제이스 공식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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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결국은 돈문제다. 선수들은 더 이른 시기에 더 많은 돈을 만지고 싶어하고, 구단과 사무국은 이같은 요구에 귀기울일 생각이 없다.
현재 메이저리그는 서비스타임을 기준으로 연봉이 산정된다. 0~3년차는 최저 임금 수준을 받으며 이후 연봉 조정을 통해 급여가 대폭 상승된다. 6년의 서비스타임을 채우면 온전한 FA 자격을 얻는다.
메이저리그 노사 모두 현재 서비스타임을 기준으로 하는 시스템의 변화를 원한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다. 선수노조는 FA 자격 획득 기준을 6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연봉 조정 대상을 2년차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원하고 있다. 구단들은 선수 보유 기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기에 반대하고 있다. 선수노조는 반대로 사무국이 연봉 조정 시스템을 통계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대체하며 진실성을 훼손하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구단들의 수익 공유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선수노조의 제안이 "구단 수익 공유 금액이 1억 달러가량 줄어들 것"이라며 이같은 조치가 스몰마켓 팀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선수노조는 구단들이 경쟁보다는 몸집을 줄이고 드래프트 지명권에 관심을 두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 구단들이 FA 영입에 소극적이면 소극적일 수록 자신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최근 "2022년 현재 이기려고 노력하는 팀은 단 17개뿐"이라며 현재 시스템을 비난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나름대로 연봉 총액 하한선 도입, 드래프트 지명권 추첨 등의 제안을 통해 선수들의 분노를 달래려고 애썼지만, 빈손으로 돌아가게됐다.
양 측이 아주 싸움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논의된 것들도 있다. 'USA투데이'는 리그 사무국이 드래프트 지명권 보상을 기반으로 하는 퀄리파잉 오퍼 폐지 의사를 드러냈고, 선수노조도 지난 시즌을 앞두고 반대했던 포스트시즌 확대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어쩌다 이렇게됐지?
협상이 결렬된 뒤, 양 측은 따로 기자회견을 열고 서로에 대한 날선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선수노조측 협상단에게서 "부담이 느겨지지 않았다"며 선수노조의 제시안이 "야구와 팬, 그리고 균형 경쟁에 해가 되는" 제안이라고 주장했다.
클락 사무총장은 만프레드 커미셔너가 직장폐쇄 발동 직후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팬들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언급하며 "그럴 시간에 협상을 더했으면 이득이 됐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조 머스그로브, 제임스 타이욘, 트레버 윌리엄스 등 선수들은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현재 공식 홈페이지에 대체된 검은색 아바타 사진으로 대체하며 사무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예상했던 대로, 양 측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날선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메이저리그 노사는 지금까지 외형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해왔지만, 속에서는 갈등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지난 2016년 CBA 작성 과정에서도 적지않은 진통을 겪었던 양 측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외부 변수가 닥치자 마침내 가면을 벗어던지고 이빨을 드러냈다. 양 측은 경기 수, 수익 배분 방식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거듭하다 결국 합의에 실패했고, 커미셔너 직권으로 60경기 시즌을 열었다.
2021시즌을 앞두고는 내셔널리그 지명타자제도 유지와 포스트시즌 확대를 놓고 노사간 의견이 엇갈리며 두 가지 모두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이렇게 최근 2년간 메이저리그 노사는 서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이 둘의 사이를 기존 CBA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으나 그 벽이 사라진 것.
이번 직장폐쇄 조치는 김광현과 같은 중간급 FA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진=ⓒAFPBBNews = News1 |
그래서 시즌은 열릴 수 있는 거야?
'2022년 시즌이 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지금 당장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시즌이 열리기 위해서는 일단 노사가 새로운 CBA에 합의해야한다. 노사 양 측 모두 지금은 서로의 탓을 하며 으르렁대고 있다. 양 측 모두 협상 의지를 드러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 협상을 이어갈지는 정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많이없다. 2022시즌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늦어도 2월초까지는 합의를 해야한다. 현지시간 기준 3월 31일 개막 예정인 시즌을 치르러면 3월 1일까지는 합의해야한다. 이때까지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시즌이 단축될 가능성까지 있다.
2020년에도 시즌 개막이 늦어진 것은 코로나19 때문이었지만, 60경기밖에 치르지 못한 것은 노사 대립 때문이었다. 2년만에 다시 단축 시즌이 열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이고 사람이다.
그건 그렇고, 김광현은 어떻게 되는 거야?
메이저리그 직장폐쇄가 구단들의 손발을 완전히 묶은 것은 아니다.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았던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영입이나 트레이드가 가능하다. 감독 선임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FA, 트레이드 영입은 완전히 중단됐다. 최근 며칠간 선수 영입 소식이 봇물터지듯 몰린 것은 직장폐쇄를 의식해 각 구단들이 분주하게 움직인 결과였다. 김광현은 이때까지 팀을 찾지 못했다. 일단 메이저리그 노사가 합의할 때까지는 팀을 찾을 수 없다.
김광현과 같은 '중간급 FA' 선수들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다. 애초에 이들은 새로운 노사 협약 논의 과정에서도 소외돼왔다. 'ESPN'은 지난 2014년 평균 1180만 달러였던 이른바 '2~3단계급 베테랑'들의 평균 몸값이 2020년 620만 달러까지 줄어들었다며 시장에서 중간급 FA 베테랑들이 소외받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여기에 FA 시장의 문이 닫혀버렸다.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한 단장은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 선수들에게 아주 흉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에이전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조차 하기싫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늘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정상적인 FA 시장이었어도 장기전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선수들이 시장에 남아 있다. 앞서 선수들이 기준점을 만들어줬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지난 시즌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124 2/3이닝 소화하며 1.1의 fWAR를 기록한 마이클 와카가 1년 700만 달러에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한 것을 생각하면, 106 2/3이닝 소화하며 fWAR 1.2를 찍은 김광현도 최초 계약(2년 800만 달러)보다는 좋은 조건을 받지 말라는 법은없다. 지금 당장은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답이다.
페이오프피치(payoff pitch)는 투수가 3볼 2스트라이크 풀카운트에서 던지는 공을 말한다. 번역하자면 ’결정구’ 정도 되겠다. 이 공은 묵직한 직구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예리한 변화구, 때로는 한가운데로 가는 실투가 될 수도 있다. 이 칼럼은 그런 글이다.
[알링턴(미국) =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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