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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 토크] IBK기업은행 ‘부실’은 누가 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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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근 IBK기업은행은 서남원 전 감독과 김사니 코치, 세터 조송화(왼쪽부터)가 뒤엉킨 내홍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민규 기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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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 사태가 ‘진실 게임’으로 바뀌었다. 구단의 위기 대처능력 부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감독 대행을 맡은 김사니 기업은행 코치는 지난 23일 흥국생명전을 앞두고 눈물을 보였다. 그는 팀을 이탈한 이유가 서남원 전 감독의 폭언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13일 훈련이었다. 서 전 감독은 세터 조송화가 자신이 요구한 플레이를 하지 않자 ‘왜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서 감독은 평소에도 언더 토스를 많이 하는 조송화에게 오버 토스를 자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언더 토스는 정확도가 높지만, 상대 수비가 대처하기 쉽다.

평소 조송화가 무릎 통증이 있다고 해도 전술 지시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서 감독의 말에 묵묵부답하던 조송화는 그대로 팀을 떠났다. 곧이어 김사니 코치도 짐을 쌌다. 김 코치는 “조송화가 나간 뒤 모든 선수와 스태프가 있는 곳에서 서 감독이 내게 화를 냈다. ‘이 모든 걸 책임지고 나가라’고 말했다. ‘야, 김사니, 너’라는 모욕적인 말도 했다”고 밝혔다.

김수지는 “우리가 느끼기에도 많이 불편한 자리였다. 그 부분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 코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선수들이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 전 감독은 “절대로 욕설을 하지 않았다. ‘감독 말에도 대답 안 해, 코치 말에도 대답 안 해.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라고 말한 게 가장 센 표현”이라고 했다.

지난 시즌에도 기업은행 선수 일부가 김우재 전 감독과 반목했다. 챔프전 진출이 걸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패한 뒤에는 “선수들이 태업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다. 김희진은 “훈련에 불만이 있다고 불성실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아픈 선수들이 더 열심히 했다. 근육이 찢어진 채 뛰는 선수가 태업하는 건가”라고 반박했다.

일을 키운 건 구단의 무능이다. 감독에게 선수가 불만을 가지는 건 흔한 일이다. 이를 풀어내는 게 구단의 역할이다. 하지만 기업은행 관계자는 트레이드 요청 등 감독과 대화 내용을 선수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구단이 되레 불화의 씨앗을 심었다.

사태 수습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조송화는 지난 14일 구단에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임의해지 서류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이를 진행했고, 결국 한국배구연맹으로부터 반려됐다. 새로 도입된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임의해지 시 구단이 아니라 선수가 먼저 서면으로 신청해야 한다. 지난 주말 서 전 감독이 경질된 후 조송화는 복귀 의사를 드러냈다. 이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기업은행은 23일 조송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팀을 이탈했다 돌아온 김사니 코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긴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김사니 코치는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돌아왔다. 새 감독님이 오면 감독 대행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했다. 감독과 불화로 팀을 떠난 지도자가 책임감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기업은행이 조송화로 꼬리를 자르고, 김 코치를 세워 방패로 삼는다는 인상이 짙다.

배구는 연결의 스포츠다. 한 선수가 공을 연달아 터치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다음 선수가 처리하기 쉽게 공을 건네야 한다. 선수와 감독 사이에서 세터처럼 가교 역할을 해야 했던 구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편한 ‘언더 토스’ 대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버 토스’를 할 때다.

김효경 배구팀장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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