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특파원 시선] 데클레르크와 노태우·전두환 사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역사적 과오에 대해 생전 사과 안되면 사후 사과라도 했어야

연합뉴스

생전의 데 클레르크 전 남아공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인종차별을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이던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 대한민국의 마지막 군부 출신 대통령이던 노태우와 전두환.

이들 모두는 서로 한 달 이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세 사람을 공통으로 묶는 화두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사과 문제이다.

데 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사후에 공개된 마지막 영상 메시지에서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에 대해 '무조건' 사과했다.

그는 흑인, 갈색(컬러드·혼혈), 인도계 등에 끼친 고통에 대해 거듭 용서를 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지난 21일 화장 후 국장 대신 가족장으로 세상과 조용히 작별을 고해야 했다.

그는 생전에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벌어진 국가보안기구의 흑인 운동가 4명 살해 등에 대해 일부 '악질적' 수하들이 벌인 짓이고 자기를 포함해 지도부는 잘 몰랐던 사안이라고 발뺌했다.

또 지난해는 아파르트헤이트가 반인도 범죄가 아니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나서 사과하고 발언을 철회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공개한 7분 12초 분량의 사후 영상 사과는 그나마 눈에 눈물도 비치면서 진솔한 측면이 있다.

연합뉴스

사후공개 영상메시지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무조건 사과하는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
[FW 데 클레르크 재단 홈페이지 영상 캡처]


그는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1996년 통과된 남아공 민주헌법의 가치를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영상에서 개인적으로 1980년대 이후 아파르트헤이트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 일종의 '개종'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더는 정당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유언에서 5·18 피해자에 사죄의 뜻을 뒤늦게나마 아들을 통해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렀지만 이번에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가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르게 됐다.

전두환 씨는 생전에 한 번도 5·18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법원의 추징금도 내지 않고 적반하장격으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강변했다.

전직 국가수반으로서 마지막까지 이런 모습을 보이고 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전에 사과하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다면 데 클레르크 전 대통령처럼 사후 공개 영상을 통해서라도 광주 유족들에게 최소한 진솔한 사과와 함께 마음의 위로라도 한마디 건넸더라며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서울=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2021.11.23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우리 국민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전직 대통령을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인이 돼 사과하려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공적이든 개인적이든 사과는 할 수 있을 때, 살아 있을 때 해야 값어치가 있다.

남아공에선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이미 2013년 타계한 터라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의 별세로 민주주의 역사가 공히 한 장을 넘겼다.

한국도 앞서 떠나간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시대' 동안 동전의 앞뒷면이던 전두환, 노태우 씨가 잇따라 사망해 민주화 투쟁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

고인들이 떠난 자리를 채워가는 것은 산 자들의 몫이다.

남아공은 부패와 심각한 빈부격차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도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며 국민의 마음을 짓누르는 부동산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

남아공이든 한국이든 소수 백인정권이나 쿠데타 군부의 강압과 힘으로 국민을 억눌러 집권하던 시기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오늘의 민주주의는 그만큼 또 당대의 과제에 대해 깨어있는 시민과 언론 그리고 민주정부를 요구한다.

sungji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