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9일 전두환씨가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받은 뒤 광주 동구 광주법원을 나가고 있다. /김기남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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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정의구현 되겠지.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훌쩍 가버렸네요. 전두환과 함께 정의도 죽은 것 같아요” 전두환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황의영씨(서울시 성동구·41)는 화가 나기보다 허탈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전씨가 사망한 23일 시민들의 주된 반응은 분노보다는 허망함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장본인이 끝내 사과 한 마디 없이 맞이한 죽음을 두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구시 남구에 사는 원영민씨(46)는 “전두환씨는 5·18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고 진상을 전혀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사망했다. 최소한의 사과를 했던 노태우씨와는 다르다”며 “사망으로 인해 밝혀야 할 부분이 묻히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고백과 증언센터 팀장은 전씨의 사망과 관계없이 5·18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팀장은 “5·18 피해자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원통함에 분노를 금지 못하고 있다”며 “집단 발포 명령과 유혈 진압 사태뿐만 아니라 5·18 희생자 암매장에 대한 진실도 밝혀야 한다”며 “5·18 피해자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원통함에 분노를 금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씨의 고향 경남 합천군 일대는 애도와 비판이 뒤섞인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합천군에서 전씨의 아호(일해)를 따서 붙인 ‘일해공원’ 명칭 변경 운동을 하고 있는 이창선씨(55)는 “오늘 군청에 가서 일해공원 명칭 변경을 위한 주민발의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사망 소식 때문에 일정을 취소했다”며 “지역 정서상 사망 당일에 당사자와 관련된 일을 진행하기 어려워서 분위기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5·18에 비자금, 추징금 문제는 물론 공원 이름 바꾸는 일조차 해결하지 않고 떠났다. 인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격한 반응이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전두환에게는 별세나 서거라는 말이 아깝다”며 “솔직히 사망이라는 단어도 아깝다. 죽음이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가 23일 보도한 “한국의 전 군부독재자(Ex-Military Dictator)가 90세 일기로 숨졌다”는 제목의 기사가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전씨 생전에 왜 책임을 더 집요하게 묻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전씨 스스로 사과하고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역사를 청산했어야 했다”며 “전씨에게 험한 말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시민사회 모두 왜 그를 자연사하도록 내버려뒀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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