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깐부(친한 친구)잖아. 깐부 사이엔 네 것 내 것이 없는 거야.” |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콘텐츠 ‘오징어 게임’ 속 대사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낸 친한 동무’라는 뜻의 깐부는 오징어 게임의 최대 ‘유행어’가 됐다.
오징어 게임을 유통한 넷플릭스는 정작 이 ‘깐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듯하다. 넷플릭스 딘 가필드 대외정책부문 부사장이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기고문 얘기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넷플릭스와 한국 창작 생태계의 깊은 파트너십과 우정은 마치 ‘깐부’ 같다”며 “한국의 인터넷사업자(ISP) 중 한 곳의 경우는 다르다”고 언급했다. 망 이용료 지불을 놓고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SK브로드밴드를 정조준한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한국 파트너사들에 정말 좋은 ‘깐부’일까. 현실을 보면 한국은 넷플릭스에 ‘깐부’보다는 ‘봉’에 가깝다.
한국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일으키면서도 비용을 한푼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콘텐츠 투자를 통해 독점적 저작권을 갖는다. 통상 영화가 대박이 나면 극장, 투자자, 제작사 등이 이른바 ‘인센티브(흥행수익)’를 나눈다. 반면 오징어 게임의 인센티브는 모두 넷플릭스가 독차지하는 구조다. 오징어 게임이 83개국에서 시청 1위를 기록하며 흥행돌풍을 일으켰지만 정작 배를 잔뜩 불린 곳은 사실상 넷플릭스뿐이었다. 이에 ‘재주는 한국 제작사가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받는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를 낼 수 없다는 주장에 또다시 ‘깐부’를 들고 나왔다. 한 마디로 망 이용료를 내라는 것은 ‘깐부’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정작 콘텐츠 제작사에 제대로 된 수익배분을 하지 않으면서 ‘깐부’를 내세워 망 무임승차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깐부에 대한 ‘아전인수’식 논리다.
넷플릭스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상 한국 콘텐츠를 ‘볼모’로 삼은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서도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다. 넷플릭스는 해당 기고문을 통해 “한국 콘텐츠에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지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오징어 게임’과 같은 숨어 있던 흥행작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기여한 바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주장의 이면에는 한국 콘텐츠 ‘투자’를 명분 삼아 망무임승차를 지속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망 무임승차 과정에서 정부, 국회, 대통령까지 ‘패싱(건너뛰기)’했다는 논란을 낳았다.실제 넷플릭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정을 ‘패싱’하고 SK브로드밴드와 법적 공방에서도 1심 패소했으나 불복한 상태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망 사용료의 공정한 계약 문제’ 필요성을 언급한 상태다. 하지만 망이용료를 지불할 수 없다는 넷플릭스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깐부’까지 내세워 망 무임승차 주장을 이어가는 것은 한국 콘텐츠 제작사, 콘텐츠를 사랑한 소비자까지 ‘패싱’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볼 때다. 이제 넷플릭스가 한국의 진정한 ‘깐부’가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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