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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보통사람' 외쳤던 노태우...영욕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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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은지 기자 = 오랜 병상생활을 해온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는 기록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상황이다. 그의 별세로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더불어 1980년대 한국 정치를 일컫던 '1노 3김' 시대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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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제13대 대통령 취임선서 [사진=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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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의 길을 걸었던 그는 대한민국 제 13대 대통령으로서 1987년 '직선제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지녔다. 노 전 대통령의 당선 당시 전국 득표율은 36%로 3김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력 역시 갖는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직선제를 통해 선출되고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는 민정당 대선 후보로 나섰으며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의 분열에서 반사 이익을 누리며 대선에서 당선됐다.

88서울올림픽 개최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북방외교는 노태우 정권의 주요 성과다. 국제통상 확대뿐 아니라 사회간접자본 확충, 국민의료보험제도 확대도 추진됐다. 이처럼 노태우 정권은 민주주의의 제도를 마련했단 평을 받긴 하지만 동시에 군사독재의 잔재란 한계점 역시 지닌다. 12·12와 5.18 관련자 처벌에 미온적이었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현재 대구)에서 부친 노병수씨와 모친 김태향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공산초등학교와 대구공업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보안사령관,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정당 대표 등을 지냈다.

그를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는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제4공화국 시절 전두환 씨와 함께 하나회를 결성한 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주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올리고 군사 독재 시절 2인자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는 신군부 세력이 제5공화국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 사건으로 전 씨가 정치적 실세로 떠오르는 계기를 제공했다. 당시 전 씨를 중심으로 한 하나회는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대통령의 재가 없이 육군참모총장 등을 강제 연행했다. 이후 전 씨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강제 진압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 13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이후 민자당 김영삼 대표에게 바통을 넘겼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뇌물수수와 내란·반란 혐의로 전 씨와 함께 구속기소 되기도 했다. 그는 퇴임 후 결국 징역 17년,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석방됐다. 다만 최근까지도 추징금 미납 논란에 시달리다가 뒤늦게 완납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는 광주를 찾아 아버지의 과거 과오를 사과하며 그의 뜻을 대신 전하기도 했다. 장남 노 씨는 지난 4월에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등 5·18 가해자의 직계 가족으로는 최초로 사과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 이에 대해 직접 사과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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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연설(1989)/사진=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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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치인으로서 노 전 대통령은 '북방 외교 정책'을 내세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소련과 중국, 헝가리와 잇따라 국교를 맺었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1989년 헝가리, 1990년 소련, 1992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총서기와 양상쿤 국가주석 등을 만나는 등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에도 힘썼다.

대북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88년 7·7 선언으로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1990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성과를 달성했다. 임기 중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 채택도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그를 수식하는 또다른 키워드인 '보통사람'은 신군부 출신이자 군사정권의 수혜자란 타이틀을 탈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는 13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부의 부당한 축적이나 편재가 사라지고 누구든지 성실하게 일한 만큼 보람과 결실을 거두면서 희망을 갖고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다"며 "이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어느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말을 남긴 그는 선거 유세를 비롯해 취임식, 각종 연설에서 '보통사람'이라는 단어를 유독 언급하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농어촌부채 탕감, 토지공개념 도입, 대기업 비업무용 토지 매각, 주택 200만호 건설 등 복지와 형평 우선주의 기조 정책을 추진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가 전 국민에게 확대 제공 된 것도 노태우 정권 때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아들 노재헌 미국 변호사가 있다. 딸 소영 씨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 중이다.

kimej@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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