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구옥희, 박세리의 맨발…200승 일군 33년 드라마

‘골퍼 구옥희, 미국 초원 정상 홀인’.

1988년 3월 28일자 중앙일보 9면에 실린 머리기사다. 당시 미국에 진출한 지 3년 차였던 고(故) 구옥희(2013년 작고)는 스탠더드 레지스터 클래식에서 3라운드 선두에 오르고, 4라운드에서 리드를 지켜 합계 11언더파로 오카모토 아야코(일본), 도티 모크리(미국·이상 10언더파)를 1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이 우승은 한국 여자골프의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역사를 개척한 시발점이었다. 그 후 33년7개월, 한국 여자골프는 24일 부산시 기장군의 LPGA 인터내셔널 부산CC에서 끝난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고진영(26)이 우승하면서 20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고진영은 합계 22언더파로 임희정(21)과 동률을 이룬 뒤 1차 연장 끝에 우승해 시즌 4승, 개인 통산 11승을 달성했다. 최근 치른 5개 대회에서 세 차례나 우승한 고진영은 이번 우승으로 여자골프 세계 1위로도 복귀하게 됐다. 고진영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200승 기록의 주인공이 돼 더없이 큰 영광”이라며 “주니어 시절 정말 ‘이렇게 연습하다가 죽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계속 발전하려면 주니어 때 마음을 갖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숫자로 본 한국 선수 LPGA 200승

한국 선수가 LPGA 첫 우승에서 100승(2012년 유소연·제이미 파 톨레도 클래식)을 거두기까지는 24년. 그러나 100승에서 200승으로 가는 시간은 9년으로 짧아졌다. 48명이 그 여정에 힘을 보탰다.

구옥희 이후 LPGA 투어 대회 우승은 6년 뒤인 1994년 11월, 도레이 재팬 퀸스 컵에서 고우순이 이뤄냈다. 이듬해에도 그는 같은 대회에서 우승, 구옥희보다 먼저 LPGA 투어 2승을 달성했다. 한국 선수의 LPGA 투어 정복이 본격화한 건 1998년. 박세리는 그해 5월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7월 US여자오픈도 제패했다. 특히 US여자오픈 연장전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샷한 장면은 지금도 회자하는 ‘명장면’이다. 박세리는 그 해에만 4승을 달성하며 LPGA 투어 신인왕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 첫 LPGA 투어 개인 타이틀이었다.

박세리와 LPGA 투어를 동반 개척한 김미현은 1999년 9월, 스테이트 팜 레일 클래식에서 데뷔 첫 우승을 하면서 한국 선수 통산 10승을 만들어냈다. 이후 한국 선수들은 매년 LPGA 투어 우승 릴레이를 이어갔다. 박세리는 2016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25승을 달성해 한국 선수 개인 통산 최다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김미현이 8승, 박지은과 한희원이 6승씩 달성했다. 한국 선수 통산 50승(김주미)이 나온 2006 시즌엔 한 시즌에만 11승을 달성했다. 한 시즌 첫 두 자릿수 우승이었다.

미국 진출 1세대의 배턴은 신지애, 박인비가 이어받았다. 언니들을 보며 자란 신지애, 박인비는 짧은 기간에 LPGA 투어 정상급이 됐다. 2008년 브리티시 여자오픈(현 AIG여자오픈)을 비롯해 그해 3승을 달성한 신지애는 2010년 한국 선수로 처음 여자골프 세계 1위에 올랐다.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처음 우승한 박인비는 박세리의 기록들을 깼다. 2013년엔 3개 메이저 대회(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 등 총 6승을 거뒀다. 이어 2015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으로 커리어그랜드슬램을, 이듬해 리우올림픽 금메달로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했다. 박인비는 21승으로 박세리 다음으로 많이 우승했다. 통산 상금은 박인비가 1783만9030 달러(약 210억원)로 박세리(1258만3713 달러·147억원)보다 많다.

고진영

유소연이 2012년 8월 제이미 파 톨레도 클래식에서 우승해 한국 선수 LPGA 투어 100승이 채워졌다. 이어 양희영이 2017년 2월 혼다 클래식에서 150승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 선수들은 2015년과 2017년, 2019년엔 한 시즌 15승씩 합작했다. 또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최다승 국가로 기록되고 있다.

2018년 LPGA 투어에 진출한 고진영은 최근 한국 여자골프 기록의 새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2019년 4승을 달성했고, 지난 11일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 우승으로 개인 통산 10승을 이뤘다. 200승으로 가는 막판 197승과 198승, 199승, 200승을 고진영이 채웠다.

부산=성호준 골프전문기자, 김지한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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