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전에서 한국전쟁의 장진호 전투가 묘사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아시아경제 권서영 기자] 한국 전쟁을 철저히 중국의 시각에서 그린 영화 '장진호'가 중국 내에서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한 중국 언론인이 해당 영화를 비판했다가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져 논란이 일었다.
10일 중국 온라인 매체 펑파이는 경제 주간지 차이징의 부편집장을 지낸 뤄창핑이 최근 형사 구류 처분을 받았다고 전했다. 뤄씨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등 고위 관리들의 부패 문제를 보도해 이들을 낙마시키는 등 사회 비판적인 보도로 이름을 알린 언론인이다.
중국 경찰은 뤄씨가 '향미 원조 전쟁'에서 싸운 군인들을 모독했다는 중국 누리꾼들의 신고를 받고 그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향미 원조 전쟁'이란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중국 내부에서 자국군이 참전한 한국전쟁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앞서 뤄씨는 지난 6일 자신의 웨이보를 통해 "반세기가 지났지만, 우리나라(중국) 사람들은 이 전쟁이 정의로웠는지에 대해 거의 반성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의 '모래조각 부대'가 위의 '영웅적인 결정'을 의심하지 못한 것과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영화 '장진호' 속 이른바 '얼음조각 부대'라 불리며 칭송받는 중공군 병사들이 동사한 모습을 담은 마지막 장면을 비꼰 발언으로 해석된다. 중국판 블록버스터 영화 '장진호'는 한국전쟁의 결정적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를 다룬 애국주의 영화로 분류되며, 지난달 30일 개봉한 이후 32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했다.
중국은 지난 2018년부터 영웅과 열사의 명예를 해치는 것을 금지하는 '영웅열사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다. 뤄씨는 이 법에 따라 영웅 열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그는 위법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웨이보는 뤄씨가 사회적인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유로 그의 계정을 폐쇄한 상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출연진. [사진 제공=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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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을 다루는 문화 콘텐츠에 대한 중국 측의 대처가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한한령 조치를 통해 한국 콘텐츠의 정식 유통을 사실상 금지했다. 방송국이나 영상 플랫폼에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없도록 규제하거나, 한국인 광고 모델을 쓰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식이다.
중국 당국은 한한령에 관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주도한 적 없는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불매 운동"이라는 대내외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중국 내수 시장에서는 오히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는 상태다. 일례로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된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중국 내에서도 암암리에 이어지고 있다.
이에 중국이 오히려 음지에서의 한국 콘텐츠 유통을 방관하며 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추세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의 해적판은 중국 내의 여러 사이트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또 지난 6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히트 드라마(오징어 게임)로 돈을 벌려는 중국 공장들이 국내와 해외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관련 상품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문화 콘텐츠의 이중적인 통제에 중국 내에서는 애국주의로 점철된 자국 콘텐츠를 두고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4일 홍콩 독립언론 '홍콩01'은 "'오징어 게임'을 해적판으로만 접한 중국의 누리꾼들 사이에서 수출이 전혀 되지 않는 중국산 영화나 드라마의 현실을 두고 비판론이 일고 있다"라는 내용의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권서영 기자 kwon192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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