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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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최근 문제가 된 '오징어 게임' 속 일부 장면을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극중 등장인물에게 전달되는 전화번호 연락처의 숫자열이 노출되는 부분을 교체하겠다는 것인데요. 드라마를 본 수많은 사람들이 이 번호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냈는데, 넷플릭스나 드라마 제작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인이 이 연락에 밤낮없이 시달리며 피해를 호소했거든요.
Q. 오징어 게임이 뭔데요?
A.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투자로 제작된 '오리지널 시리즈'예요. 지난달 17일 공개됐어요. 줄거리는 1번부터 456번까지 번호가 붙은 초록색 운동복을 입은 참가자 456명이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여러가지 게임을 진행한다는 내용이고요. 영화 '남한산성'과 '도굴' 등을 만든 한국 영화제작사 싸이런픽쳐스(Siren Pictures)가 이 드라마를 제작했죠.
Q. 그 드라마…재밌나요?
A. 그런 것 같아요. 공개 1주일 만에 미국을 포함한 수십개국의 인기 콘텐츠 순위 1위를 차지했더라고요. 월말까지 인도를 제외한 모든 넷플릭스 정식 서비스 국가에서 1위에 올랐고요. 결국 이달 1일 인도에서도 오징어 게임이 인기 드라마 2위에서 1위로 올라, 한때 83개국에서 1위 자리를 누렸어요. 엄청난 흥행을 한 거죠.
Q. 그런데 무슨 전화번호가 나온다고요?
A. 오징어 게임은 총 아홉 편인데요. 그중 1·2편에서 하나, 9편에서 하나, 이렇게 두 개의 전화번호가 나와요. 등장인물들을 생존 게임에 초대하는 명함에 적혀 있는 번호죠. 등장인물에게 명함이 전달될 때 화면이 클로즈업돼요. 명함에 적힌 여덟 자리 숫자가 똑똑히 보이죠. 숫자에 지역번호나 010 같은 앞자리 수는 없지만요.
Q. 창작물에 흔히 나오잖아요?
A. 물론 전화번호가 창작물에 나오는 경우는 흔해요. 창작물은 가상의 인물, 배경, 사건을 다루니까, 그 안에서 쓰이는 연락처나 주소도 가상이죠.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아니었어요. 드라마 아홉 편 중 세 편에서 나오는 전화번호가 모두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실제 휴대전화로 연결되는 번호였어요. 넷플릭스나 드라마 제작사와 무관한 분들의 번호였죠.
Q. 그게 문제가 됐나요?
A. 네. 우리가 보통 휴대전화 번호를 '○○○-○○○○-○○○○' 형태의 열한 자리 숫자로 쓰지만, 지금 앞의 세 자리 수는 누구나 '010'으로 똑같죠. 지금 일반적인 휴대전화로 뒤의 여덟 자리 숫자만 입력해도 앞자리에 010이 자동으로 붙어서, 전화가 연결돼요. 지난달 17일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자 한국의 시청자들이 그 여덟 자리 숫자를 눌러서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죠.
Q. 뭐, 누가 얼마나 걸었겠어요.
A.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고 언론에 밝혔는 걸요. 이렇게요. "오징어 게임 방영 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24시간 문자와 전화가 쉴 새 없이 온다. 10년도 더 된 번호가 이리 되자 황당하다. 최근까지 삭제한 전화번호만 4000개가 넘는다. 밤낮으로 시간 개념도 없이 호기심에 오는 연락에 휴대폰 배터리가 반나절이면 방전되어 버릴 정도." 드라마 공개 1주일 만의 상황이었죠.
Q. 그러다 말 텐데, 좀 참고 넘어갈 수 없을까요?
A. 그냥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끊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받으면 욕설을 퍼붓거나, 드라마를 현실로 착각한 듯이 자기가 빚이 십수억 있다면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고 싶다는 둥, 황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게다가 당사자는 이 번호를 10년 이상 된 본인의 사업용 연락처로 쓰고 있어요. 물리적·정신적인 피해뿐 아니라 상업적인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거죠.
Q. 전화 건 사람들이 잘못했네요.
A. 욕설이나 황당한 요구를 했다면 잘못이지만 대부분은 단순 호기심의 표현일 거예요. 창작물 속 인물, 사물, 장소, 풍경에 관심을 갖고 현실과의 접점을 찾고 싶어할 수 있으니까요. 그걸 숙고해 대비하는 게 창작자와 제작사 역할이죠.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제작사들에게 '스크린 노출용 전화번호'를 제공해요. 창작물에 남의 번호를 함부로 노출하면 안 되는 게 당연하니까요.
Q. 제작사 책임이 크군요?
A. 문제가 불거진 뒤에 제작사와 넷플릭스가 이 사안을 매끄럽게 처리할 시간과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론이 나빠지고 있어요. 이 사건에 대한 SBS의 초기 보도에 따르면 제작사 측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가 번호를 바꿀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식으로 얘기해 공분을 샀죠. 넷플릭스는 드라마를 공개한 지 20일 만인 지난 6일에야 해당 장면 교체를 결정했죠.
Q. 그럼 이제 해결된 건가요?
A. 아직요. 이 사태가 잘 마무리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할 거예요. 하나는 가능한한 빨리 제작사와 넷플릭스가 무단으로 타인의 번호를 노출한 오징어 게임 드라마 속 장면을 문제 없는 장면으로 바꿔서 서비스하는 거죠. 다른 하나는 이 드라마가 공개된 직후부터 이렇게 조치가 되기까지 걸린 기간만큼 피해자가 겪은 고충과 정신적·사업적 피해에 대해 배상·보상하고, 공식 사과하는 거고요.
Q. 넷플릭스와 제작사에 법적인 책임이 있나요?
A.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실제 번호를 사용하는 현실의 개인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이긴 하지만 노출된 번호가 창작물 속에 등장했고 현실의 개인을 특정한 건 아니기에 그 자체가 '개인정보'는 아니라고 본다고 해요. 다만 이번 사안에 대해선 '개인정보 분쟁조정제도'로 구제할 방안이 있을지 검토하겠고, 유사 피해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법 적용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에요.
Q. 남의 전화번호를 그렇게 막 노출해도 법 위반은 아니라고요?
A. 현실의 개인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인 것 같아요. 이건 사실 논쟁의 여지가 많은 관점이에요. 인명, 생일, 출생지 등은 노출돼도 별 문제 없지만, 휴대전화번호, 거주지 주소 같은 개인정보는 개인이 특정되냐와 무관하게 당사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잖아요. 어쩌면 창작물에 고의로 개인정보를 노출시키고 '이건 픽션이다'라는 주장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고요.
임민철 기자 imc@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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