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명 ‘글로리 게이트’로 막판 철수 작전
미 해병대원과 영국군, 터키군들이 지난 8월 2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한 민간인 소년의 탈출을 돕고 있다. /미 육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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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앙정보국(CIA)이 존재 자체를 숨겨왔던 ‘비밀의 문’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요인들을 탈출시켰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아프간 무장조직 탈레반은 수도 카불의 하미드 국제공항에서 북쪽으로 2마일(약 3.2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이런 비밀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CIA가 만든 ‘비밀의 문'은 하미드 국제공항 북쪽의 주유소 맞은 편에 있었다고 한다. ‘글로리 게이트(영광의 문)’, ‘리버티 게이트(자유의 문)’ 등의 코드명이 붙어 있는 이 문의 입구는 지게차로만 옮길 수 있는 무거운 방호벽과 철조망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또 CIA 공작원과 미국 대테러 특수부대 델타포스, CIA가 훈련시킨 아프간 민병대 등이 이곳을 지켰다고 한다. ‘오투(02)’로 불렸던 CIA 소속의 아프간 민병대는 이곳을 지키다가 미군과 함께 마지막 수송기를 타고 카불을 빠져 나왔다.
한 전직 CIA 공작원은 “(비밀의 문 맞은 편의) 주유소가 아프간 사람들을 데리러 가는 장소였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이전부터 CIA에 협조하는 정보원이나 현지 직원 및 가족, 백악관이 CIA에 보낸 명단에 있는 요인 등을 빼내기 위한 일종의 접선 장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뒤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기 직전까지 이 문은 국무부가 주아프간 미국 대사관에서 일했던 아프간 협조자들을 철수시키기 위한 주요 통로로 쓰였다고 한다. 탈레반이 설치한 검문소에 가로막혀 공항까지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탈출시켰다는 뜻이다.
도보나 버스를 통해 비밀의 문을 통과한 아프간 사람들은 방호벽 뒤에서 검색을 받은 뒤 차량에 태워졌고, 콘크리트 통로를 통해 ‘캠프 알바라도'로 알려진 공항단지 내 미군기지로 옮겨졌다. CIA는 이곳에서 더 북쪽에도 제2의 비밀 통로를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는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미군의 완전 철수 나흘 전인 지난 8월 26일 이 문을 통해 탈출한 ‘압둘’이란 아프간인은 그 과정을 상세히 전했다. 미대사관 동료들이 우선 카불시 외곽의 접선장소에 와서 ‘404 M 98311 KBL’이라고 적힌 버스를 타라고 했다는 것이다. 압둘과 임신 9개월인 아내, 어린 두 아이는 30분쯤 버스에 타고 간 뒤 CIA가 열어준 비밀의 문을 통해 공항 단지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들은 이전에 몇 번이나 카불 국제공항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비밀의 문을 통과한 뒤에도 몇 번의 검문소를 통과하는 데 4~5시간이 걸렸고, 여기에서 압둘 가족은 미국 입국을 위한 서류 작업과 생체정보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2시 카불국제공항에 내린 C-17 군용 수송기를 타고 다른 600명의 사람과 함께 독일로 탈출했다는 것이다. 임신 9개월인 아내에게는 수송기 내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좌석이 배정됐지만, 대부분의 승객은 독일까지 12시간의 비행을 물이나 음식 없이 서서 견뎠다고 한다.
8월 26일 오후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가 카불국제공항을 지키는 미 해병대원 등을 상대로 자폭 테러를 벌인 뒤, 공항으로 들어가는 모든 통로는 폐쇄됐다. CIA가 만든 이 비밀의 문만 유일하게 열려 있는 통로였고, 이곳으로 미국시민권자와 영주권자 및 아프간 협력자 가족들이 탈출할 수 있었다.
‘모스크에서 춤추기’란 책을 써서 유명해진 아프간의 여류작가 호메이라 카데리는 8살 된 아들을 데리고 탈출하기를 포기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8월 27일 저녁 6시 30분쯤 미 국무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서 “당장 공항으로 출발하라”고 말해줬다. 이들 가족은 ‘글로리 게이트’를 통과해서 무사히 탈출했다. CIA 통로를 이용해 아프간을 떠난 가장 마지막 그룹에 속했다고 한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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