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소득 상위 주민들에게 포함해 자체 예산으로 지원금을 주겠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늘면서 또 다른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재정 형편상 지원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지자체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실한 설계와 표 계산에만 몰두한 여당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급 대상을 가리기 위한 줄다기리에 당정이 골몰하는 동안 피해가 누적된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 취재를 종합하면, 중앙정부의 국민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주민들에게 지원금을 주겠다는 광역·기초 지자체들이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 경기도는 다음달 1일부터 정부의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도민 약 253만7000명에게 1인당 25만원씩 제3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정부의 방역조치에 적극 협력하고 희생했던 모든 국민들께 그에 대한 보상도 고루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에서는 논산·계룡·서산·공주·청양·금산 등 14개 시·군이, 강원에서는 삼척·정선·철원·화천·양구·인제 등 6개 시·군이 각각 지원금을 추가 지급할 계획이다. 국민지원금과 별개로 모든 주민에게 10만∼25만원씩 지역화폐 개념의 상품권을 지급하는 지자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소득 상위 주민들에게까지 지원금을 줄 만큼 재정이 넉넉한 지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정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선심쓰듯 예산을 집행하면 자연재해 등 막상 긴급 집행이 필요할 때 예산이 부족할 수 있고,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지자체 주민들 간에 형평성 논란을 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국 시도의회의장협의회 소속 의회 의장들도 최근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겪고, 지역 간 갈등까지 초래할 수 있다”며 지자체 차원의 지급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채, 보편과 선별 사이에서 정부와 여당이 줄다리기를 반복하면서 논란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선별지급 기준으로 삼은 건보료와 고액 자산가 컷오프(배제) 등에 대해서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며 “그럼에도 이 모호한 기준을 지금까지 준용하고 있고, 소득파악 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하면서 논란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당정이 선별지급으로 방향을 정한 후에도 지급 기준선을 소득 하위 70%에서 80%, 90% 등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서 국민 불신을 자초했다”며 “피해가 집중된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게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 사이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더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박 교수는 “정부의 부실한 지원금 설계도 문제가 있지만, 선거를 의식한 여당의 주도 하에 국회 심의 과정에서 기준이 또다시 흔든 것이 국민 신뢰를 떨어뜨린 큰 요인”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난달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추석 이전 국민지원금 지급 방침을 밝히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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