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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또 다른 9·11 계획하나?”… 아프간 앵커 돌직구 질문에 진땀 뺀 美 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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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언론과 첫 인터뷰

앵커, 미국이 아픈곳만 건드리며 돌직구 질문 던져

”탈레반 승인,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판에 박힌 말만

“장관님. 20년(의 전쟁기간), 수조달러(의 전비 및 재건자금), (희생된) 수천명의 목숨. 이런 식으로 끝났어야 하는 건가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화상으로 마주한 아프가니스탄 뉴스채널 톨로뉴스 대표 로트풀라 나자피자다가 카랑카랑 목소리로 던진 첫질문부터 날이 잔뜩 벼려있었다. 능수능란한 화법으로 각종 인터뷰를 해왔던 ‘외교9단’ 블링컨은 잔뜩 굳은 얼굴로 “그 질문과 관련해서는 언젠가 때가 되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다가 말을 약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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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톨로뉴스의 로트풀라 나자피자다 앵커가 카타르 도하에 머물고 있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화상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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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 함락과 탈레반 장악 후 숱한 국내외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면서 미국의 입장을 강변해오던 블링컨 장관이 8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현지 매체와 처음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잇따라 날아오는 돌직구성 질문에 답변하느라 진땀을 뺐다. 톨로뉴스는 카불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24시간 TV뉴스 채널이다.

11분 인터뷰 동안 나자피자다 앵커가 던지는 돌직구성 인터뷰에 블링컨 장관이 진땀을 빼는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블링컨이 “당신 말대로 20년의 기간 동안 1조 달러 이상이 소요됐고 많은 목숨이 희생됐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뀌었다. 향후 며칠, 몇주, 몇 달간 우리는 들여다볼것이고 이 주제에 대해서 앞으로 대화하고 토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자피자다는 “왜 탙레반의 귀환으로 결론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블링컨은 “음. 내 생각에는 이건 수 년전, 그 보다도 훨씬 전으로 돌아가서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며 탈레반이 진격하면서 아프간을 장악하는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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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장관과 화상 인터뷰 중인 톨로뉴스의 로트풀라 나자피자다 앵커. /톨로뉴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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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나자피자다는 “마지막 수백일동안의 상황은 아주 극적이었다. (탈레반이 그렇게 빨리 진격해오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블링컨은 “많은 아프간 병력이 놀랄만한 용기로 싸웠고 엄청난 희생을 겪었다. 하지만 정부는 더 궁극적으로 달아났다. 이 모든 일들이 아주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나자피자다는 미국의 아픈 곳만 골라서 돌직구를 날리는 양상이었다. “당신들은 심지어 미국인들조차도 전원 탈출시키지 못했다. 많은 아프간인들, 특히 보안군 소속들은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그들은 미국측 협력자들에 의해 버림받은 것”이라고 따지듯 물었다. 또 압둘 가니 대통령이 도망칠 것을 미리 알았는지를 물으면서 “그는 현금 수백만 달러를 챙겼고, 거기에는 당신네 납세자들의 돈과 우리 아프간인들의 돈도 있다. 그걸 아는가”라고도 물었다. 블링컨이 “난 모른다. 내가 아는 거라곤 그가 떠났다는 것, 아주 아주 빠른 시일내에 떠났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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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아프간 톨로뉴스와 인터뷰 중인 블링컨 장관. /톨로뉴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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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정부에 대한 인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공식과 같은 답변과 이와 관련한 설명을 이어간 블링컨 장관. 그에게 다시 나자피자다의 날카로운 질문이 나왔다.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고) 지난 3주동안 이런 일들을 봐왔습니다. 언론인들은 구타당하거나 체포됐고, 여성 시위대들도 구타당했으며, 강의실은 남녀 성별로 분리됐고, 지역 언론사들은 폐쇄됐고, 민가는 습격당하고, 심지어 벽화도 훼손이 됐습니다. 또 뭘 보고 싶은가요? 또 다른 9·11을 계획하시나요?” 언론인 이전에 서방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프간인의 한과 독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판지시르 계곡에서 고립돼 서방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반군과 연락하고 있는지를 묻자, 블링컨 장관은 “우리의 당면 현안은 국제사회와 협력해 현재 떠오르고 있는 정부에 대한 기대사항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군에 대한 관심이 없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나자피자다가 “인터뷰 시간이 다 됐는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또는 아프간 침공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는지 간단하게 답해달라”고 하자 그는 답변에 들어가기 전에 “심대한 질문이면서 중요한 질문”이라며 앵커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민주주의는 아프간인들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포기하셨나요?” 블링컨이 답했다. “아뇨. 아프간을 포함해 전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기본적인 욕구와 열망과 희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인권선언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아프간인에도 적용돼야 한다. 차기 아프간 정부가 기본권을 지켜주길 바라고 기대한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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