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표지 사진 도배를 위해 모금 활동을 벌였다가 60일 폐쇄 처분을 받은 BTS 지민의 웨이보 계정. [웨이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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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출연료 철퇴에서 시작된 중국 당국의 대대적인 연예계 정화 운동이 한류를 표적 삼기 시작했다. K팝 팬클럽 단속에 이어 스타 추종문화를 한국에 돌리는 ‘책임론’까지 관영매체가 주장하고 나섰다. 외국 연예인들에 대한 중국식 ‘빗장 걸기’를 표방한 한적령(限籍令·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 국적을 제한)과 맞물려 제2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조짐이 보인다.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7월 K팝 앨범 판매액 2600만 달러 가운데 825만 달러를 중국에서 벌었다”며 “한국 연예산업이 앨범이나 아이돌 관련 상품의 판매에서 중국 팬클럽에 많이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스타 추종문화는 한국이 근원이며 연예계 정화 캠페인에서 한국 스타가 예외가 될 수 없다”고 7일 주장했다.
이에 앞서 중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는 5일 BTS, 아이유, 엑소 등 K팝 팬클럽 계정 21개를 “비이성적인 스타 추종 행위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30일에서 60일간 정지 처분했다. 이들 팬 계정에는 각각 수백만명이 모여있다.
이번 조치는 최근 방탄소년단(BTS) 지민 팬들이 온라인으로 거금을 모아 지민 사진으로 뒤덮은 항공기를 띄운 데서 비롯됐다. 관영매체 펑파이(澎湃)는 이와 관련 “일부 사생팬의 광적인 행위는 세뇌당하고 넋을 잃은 결과”라며 “그들은 열광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찍이 판단력과 이성을 잃었다”고 6일 비판했다. “한국 스타를 응원하는 행위는 역시 여러 수단과 요인이 얽혀 있고 꼬리가 너무 커서 흔들 수 없을 정도여서 철저하게 뿌리 뽑기 위해서는 여러 부처와 시스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때려잡아야 한다”고 당국의 철퇴를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7월 1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공산주의청년단 소속 학생들이 중국 국기와 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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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인터넷 심의 기구인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과도한 ‘팬덤’ 현상을 뿌리 뽑겠다며 ‘청랑 ‘팬덤’ 혼란 응징’으로 명명한 단속을 시작했다. 5월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베낀 ‘청춘유니’가 발단이었다. 아이돌 팬클럽이 부모를 동원해 멀쩡한 협찬사 우유를 버리는 영상이 공개되자 먹거리 낭비를 금지한 시진핑 주석의 지시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단속 당국이 총출동했다.
이 같은 연예계 정풍(整風)운동은 고액 출연료부터 시작된 ‘연예계 손보기’의 일환이다. 지난 2017년 방송 규제 기구인 광전총국은 배우 출연료가 전체 제작비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이중 계약서를 통한 탈세도 단속했다. 지난 2018년에는 여배우 판빙빙(范冰冰·40)이 1400억원, 지난달에는 정솽(鄭爽·30)이 540억원의 벌금을 추징당했다. 드라마 ‘황제의 딸’로 유명한 자오웨이(趙薇·45)는 지난달 돌연 모든 출연작이 중국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사라지며 퇴출당했다.
최근엔 출연자 국적 시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 홍콩‧캐나다 출신 연예인 니콜라스 체(중국명 셰팅펑(謝霆鋒·사정봉·41)는 중국중앙방송(CC-TV)에 출연해 이중국적 포기 사실을 알렸다. 그는 “홍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본래 중국인”이라며 “이미 캐나다 국적 이탈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1980년 홍콩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 돌아온 그는 배우 장바이즈(張柏芝)와 5년간 결혼생활을 했고 현재 가수 왕페이(王菲)의 연인이다.
홍콩 연예인 니콜라스 체가 지난 5일 중국중앙방송(CC-TV)에 출연해 캐나다 국적을 이미 포기했다고 밝히고 있다. [CC-TV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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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영화 ‘황비홍’의 리롄제(李連杰·이연걸), ‘뮬란’의 류이페이(劉亦菲·유역비), 가수 쑨옌쯔(孫燕姿), 왕리훙(王力宏) 등 외국 국적 연예인 9명의 ‘한적령 리스트’가 돌고 있다.
한적령은 법적 근거도 있다. 지난해 2월 21일 광전총국이 발표한 ‘인터넷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콘텐트 심의 표준 세칙’이다. 세칙은 “예능 제작자 및 영화 제작자가 스캔들·악행·불법 범죄 등으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을 선발해서는 안 된다”며 “외국 국적 혹은 홍콩·마카오·대만 인사를 선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명시했다. 특히 리롄제는 지난 1997년 미국 국적, 2009년 싱가포르 국적으로 두 차례 변경해 당국의 퇴출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한적령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뜻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첫 글자를 따 ‘N세대’로 불리는 청년 국수주의자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달 30일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후 경제력 성장과 애국주의 세례에 고무된 ‘N세대’가 부상하면서 중국 당국의 애국·애당 캠페인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위협하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최근 국수주의로 무장한 N세대 청년이 굴기하고 있다고 보도한 지난달 30일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지면. [SCMP 캡처] |
중국의 N세대는 한국과 대만 연예인을 주로 저격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 인기 여배우 장쥔닝(張鈞甯·39)이 11년 전 석사 논문 제목에 ‘우리나라(我國)’를 썼다는 걸 들춰내 ‘대만 독립분자’라고 공격했다. 장쥔닝은 6일 밤 자신의 웨이보에 “양안 중국인 모두 중화 민족의 구성 부분”이라며 “나는 ‘대만 독립주의자(臺獨)’가 아니다. 5000년 중화 문명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정정당당하게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선 중화 아녀의 길”이라고 항변했다.
대만 여배우 장리쥔(왼쪽)과 그의 석사논문 표지. [웨이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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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예계 정풍운동이 거세질수록 한한령도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조장하듯 환구시보는 7일 한국의 연예산업 관계자를 인용해 “코로나19 안정 후 정식으로 중국 진출을 준비 중이지만 최근 단속으로 리스크가 상상보다 크다”며 “업계에서는 중국 외에 다른 시장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장관은 6일 국내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곧 실마리가 풀리고, 중국 정부가 민간에 좋은 신호를 보낼 것”이라며 한한령 해제가 임박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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