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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며 치아 치료비를 요구한 남성에게 돈을 이체한 영세상인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남성은 자신의 방문 사실을 증명하지 않은 채, 가게에 전화를 해 금전을 요구했다. 실제로 그가 가게에 방문한 적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피해 사례가 수차례 일어났음을 파악했다. 경찰은 남성의 연락처와 계좌번호 등을 토대로 동일범 소행으로 추정, 30대 남성 A씨를 상대로 추적에 나섰다.
A씨의 사기 행각이 발각된 건 지난달 6일. 충북 옥천군의 한 만두집 주인이 A씨 계좌로 5만원을 이체한 뒤였다. A씨가 “포장해 간 만두에서 이물질이 나왔다”, “이빨을 다쳤으니 치료비를 보상해달라”라며 금전을 요구했다고 한다. 만두집 주인은 한국외식업중앙회 충북지회 옥천지부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며 “돈을 먼저 이체했는데, 어떻게 처리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외식업중앙회 옥천지부 관계자는 “음식물배상책임보험으로 접수하라”고 안내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뒤, 똑같은 내용의 문의 전화가 다른 식당으로부터도 걸려 왔다. 수상함을 느낀 옥천지부는 자체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옥천군에서만 최소 8곳의 식당이 같은 연락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충북지회의 조사 결과, 옥천군뿐 아닌 영동군 3건, 보은군 2건 등 피해사례가 나왔다. 영동군의 식당 세 곳에선 A씨에게 8만~10만원가량을 이미 이체한 뒤였다고 한다. 옥천지부는 A씨 전화를 받았던 칼국수집 사장 이석수(48)씨를 대표로 피해 사례들을 모아 지난달 11일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피해 사례는 충북뿐 아니었다. 경남 사천시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김경곤(56)씨도 지난달 16일 A씨의 전화를 받았다. “포장해간 김말이에서 플라스틱이 나와 이빨이 부러졌다”며 “치료비로 5만원을 이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먼저 치료를 받고 영수증을 갖다 주면 보상하겠다”고 답했지만, A씨는 “통영에 출장을 와 있다”며 “돈을 이체하지 않으면 당장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5만원을 이체했다. “동네 장사하는 마당에, 괜히 흉흉한 이야기가 돌까 걱정됐다”고 한다. 이틀 뒤 영수증을 챙겨 가게를 찾겠다던 A씨는 돈을 이체한 뒤 연락 두절됐다. 김씨는 “우리 식당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김말이를 만들어서 플라스틱이 나올 일이 없다”면서도, “큰돈이라면 의심부터 했을 텐데, 소액이라 더 교묘하게 속았다”고 말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경남지회 사천지부 역시 비슷한 내용의 문의를 수차례 받았다. 경남지회 조사 결과, A씨 전화를 받은 건 경남 통영시 5건, 사천시 3건, 산청·하동·남해·창녕군 1건 등 최소 12건으로 드러났다. A씨는 같은 수법으로 식당마다 5만~10만원의 돈을 요구했다. 김씨처럼 “가게를 방문하라”, “보험부터 접수하겠다”라고 답하면, A씨는 “그냥 식약처 신고하고 인터넷에 글 올리고 말게요”라며 협박투로 맞대응했다. 피해 사실을 인지한 한국외식업중앙회 지부들은 지난달 18~19일 관내 업주들에 “동일 피해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 바란다”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
A씨는 식당과의 통화에서 “현금영수증도 (발급)받았다”며 자신의 방문 사실을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 식당들에서 조회한 결과 A씨 연락처로 접수된 현금영수증 이력은 없었다. 수사를 맡은 옥천경찰서 관계자는 “동일 수법으로 수차례 사기 행각을 펼친데다 코로나로 어려운 영세 상인들의 약점을 노렸다는 점을 고려해 수사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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