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조직원들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무혈입성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국외로 도피하며 버려둔 대통령궁을 접수하고 있다. /AP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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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정재호 기자 = 탈레반이 재정복한 아프가니스탄을 놓고 주요 강대국들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영국 등 서방 세계가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인 반면, 중국·러시아 등은 아프간 친미 정권이 무너진 자체만으로 환영하는 모양새다. 이른바 ‘신(新)냉전 구도’ 탓에 끝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의 재판이 될 소지가 다분해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아프간을 20년 만에 재점령한 탈레반은 17일(현지시간) 첫 공식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정부 수립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탈레반 정부가 향후 국제사회에서 정당하게 인정받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미국 다음으로 아프간전에 가장 많은 군대를 투입하며 공을 들였던 영국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직접 나서 “아무도 성급히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올해 주요7개국(G7) 의장국인 영국은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G7 정상회의 소집을 요구한 상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동참했다. 그는 “모든 형태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에 맞서 계속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이 우선”이라며 “아프간이 과거 같이 다시 테러의 성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감한 처지다. 탈레반은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아프간을 점령했다. 이번 일로 국제사회 주도권에 흠집이 생겼고 아프간전에 참전한 유럽 동맹국의 테러와 난민 증가 우려를 달래야 하는 임무마저 떠안았다는 분석이다.
반면 미국·서방에 맞서 신 냉전 체제를 구축한 중국·러시아는 친미 정권이 무너졌다는 데 방점을 두고 셈법이 바쁘다. 두 나라는 아프간에 대사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탈레반을 ‘아프간의 새 정권’이라고 칭했다. 중국은 현지 재건 사업에 적극 참여하며 역내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러시아 측에서는 자미르 카불로프 아프간 특사가 “괴뢰(미국) 정부보다 탈레반이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았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다만 러시아는 구 소련 시절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큰 손해를 본 경험이 있어 다소 조심스럽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탈레반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일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둘로 갈라진 신 냉전 구도가 적용되는 형국이라는 점에서 아프간은 미얀마와 닮은꼴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지 7개월째인 이달 초 미얀마 군부는 과도 정부를 출범시키고 군부 총사령관이 신임 총리에 올랐다. ‘과도 정부’라는 표현만 썼을 뿐 사실상의 군사 정권 탄생이다. 미얀마 군부가 ‘1년 뒤 총선’ 약속을 어기고 정권 장악 절차에 속도를 내는 것은 국제사회의 무력한 대응이 한몫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얀마를 비호하는 상황에서 국제연합(유엔·UN)과 미국·유럽 등이 적극적인 개입을 꺼린 결과다.
이렇게 되면 결국 여론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세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탈레반 정권은 이날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전쟁은 종료됐다고 선언하며 그동안 가장 지탄을 받던 여성 인권 문제 등에 대해 달라지겠다고 약속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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